삶은 정리의 연속이구나
결혼 초반, 본의 아니게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살았다.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는 데 들떠있었다. 이런저런 꿈에 부풀어 작은 집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작은 집에 물건이 많으면 청소도 힘들어."
엄마의 충고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그렇다고 한 번에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워낙 잘 못 버리던 성격이라, 처음엔 '없애기'가 아니라 '바꾸기'였다.
좀 더 작고, 좀 더 편리한 물건으로. 그만큼 새 물건을 들이는데 신중해졌다.
신중한 만큼 물건의 부재 시간은 길어졌다.
자연히 부재를 느끼지 못하는 날도 늘어났다.
'어라? 없어도 되겠는데? 일단 없이 살면서 천천히 고르자.'
시간 벌이용 부재는 점점 길어지고 '없어도 되는 물건'으로 결론이 난다.
점점 버리고 채우지 않는 속도가 붙었다.
물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 집은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공간을 사람이 아닌 물건이 차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청소도 편하고, 삶도 뭔가 느긋했다.
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만족스럽던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몇 년 후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간의 실패와 경험으로 우리만의 적정선을 찾는 데 성공했다.
우리한테 맞는 스타일을 찾은 뒤 비로소 삶의 질이 향상됐다. 이제 끝이겠구나 했는데.. 정작 스트레스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오기 시작했다.
서랍 속, 장 속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생활 소품들.
어지간한 물건들은 수시로 버리고 버려서 비웠지만,
여전히 자잘한 물건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꼭꼭 숨어있었다.
각종 문구류들, 손과 발 팩, 머리 끈, 각종 노트들..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왠지 썩히는 기분이 들어 외면이 힘들다.
그 존재를 한 번 느끼고 나니 머리가 어수선하다.
작은 소품들은 바로 가늠이 안 되니 더 그런 것 같다.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쓰고 버려야겠다.
쓸 건 쓰고,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눠야지..
요즘 제일 거슬리던 정체는,
숙소에서 챙긴 각종 어메니티들이다.
여행 다닐 때 용이해 챙겨뒀던 물건들인데,
코로나 여파로 여행을 잘 못 다니면서 방치돼 있다.
엄청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쓸데없이 박혀 있는 게 거슬린다. 그렇다고 바로 버리자니 아깝다.
써서 없애자.
'앞으로 여행 다니면서 쓰면 되지~' 할 수 있지만,
어지간한 숙소는 다 구비돼 있어서 쉽게 줄지 않는다.
또, 그러기엔 이미 오래됐다..
화장실에 샴푸, 바디워시, 바디 로션 하나씩을 놓고 쓰기 시작했다. 한두 번 쓰면 바로 비울 수 있겠지 하고 무시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작다고 무시할 수 없다.
큰 물건들은 결심하기가 어렵지않다. 마음만 먹으면 오히려 정리도 쉽고, 한 번에 정리가 되니 쾌감도 빠르다.
작은 물건들은 비우는 건 오히려 시간이 걸리고, 정리가 돼도 티가 별로 안나 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메니티를 시작으로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야겠다.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자주 사용하며 천천히 정리해야겠다. 작은 물건의 영향력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작다고 마구 사들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