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짧은 파편
"너 해냈구나!"
-<유랑하는 자본주의자> 중
28km. 무거운 가방을 메고 순례길을 걸어온 그들에게 먼저 도착한 린다가 외쳤다.
이 대사 한마디가 뭐라고 코 끝이 찡해졌다.
집이 아닌, 대형 서점 한쪽 테이블에 앉아 울 수는 없는노릇이다. 이 문장을 필사하며 찡한 감정을 잠시 외면한다.
왜 찡했을까?
"해낼 거야" "해낼 수 있을 거야".
불안한 미래를 담보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잔뜩 안겨주는 포장된 미래지향적인 말이 아니라
내가 다다른 현재를 인정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28km밖에 떨어진 알베르게에 도달할 거라는 내재된 믿음과 힘겨운 과정을 인정해 주는 그 말이
내가 듣는 것도 아닌데 너무 달콤했다.
그 순간 알았다.
정말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해낼 거야'가 아니라
'해냈구나!' 였음을.
나의 무거운 짐을 메고 28km를 걸어야겠다...
길 끝에 있는 것이 그토록 원하는 그것이 아닐지라도
내가 도착점에서 무엇이 있길 바라는지 그 정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제보단 희망찰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