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필사
나의 단점은 꾸준히 못한다는 것이고,
장점은 그걸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
한참 의욕 있게 시작한 매일 필사는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결국 생각날 때 한 번으로 바뀌었다.
필사 책을 바라보는 일이
내 죄를 보는 것 같아 외면하기도 했다.
결국 합리화라는 목적지까지 도달했다.
‘필사해서 뭐 해.’
26년 새해를 맞아
필사를 야심 차게 다시 시작했다.
‘내가 저 필사 책 한 권은 끝까지 해보리라.’
꾸준히 못하는 병을 고치기 위해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하며 대안을 찾았다.
병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원인을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원인은 생각보다 명확했다.
<단기, 시각적 결과를 바라는 성향>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의미 없다고 느끼면 못 한다.
결과나 성취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못 한다.
필사를 꾸준히 못 한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이전의 나는 필사만 한 게 아니라
좋은 문장의 의미까지 분석해 보겠다고 덤볐다.
그러니까
한글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가
국어 문법과 문학 공부를 하겠다고 덤빈 셈이다.
그래서 정확히 ‘한글 공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필사만 하자.
문장을 손에 익히자.
또 하나,
꾸준히 못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하나 처방했다.
체크리스트.
안 해본 건 아니다.
다이어리에 매일 체크리스트를 썼다.
-3월 1일 필사 0
-3월 2일 필사 X
그리고 알았다.
하루에 한 번씩 투두리스트를 지우는 방식은
내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그건 일회성 만족감에 불과했다.
매일 꾸준히 못하는 사람에게
“오늘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도파민이 부족했다.
매일 해서 뭐?
그래서 뭐가 되는 건데?
의미 부재는 곧 의욕 상실이었다.
쌀 한 톨씩 배급받으면 순간 좋지만,
입에 넣고 꿀꺽 삼키면 다시 배고파지는 상황.
차라리
한 톨씩 모아 쌀바구니에 담고
오늘은 어느 정도 찼나,
내일이면 어느 정도 차나,
한 달 뒤면 반쯤 차겠네—
이게 필요했다.
오늘 했다는 뿌듯함에
한 달 뒤 이만큼 쌓이겠다는 ‘희망’ 한 스푼이 더해져야 한다.
30칸 잔디심기 게임처럼.
현재의 뿌듯함보다 내일의 희망이
내겐 더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큰 깨달음이었다.
나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이제 어떤 일을 시작하던지
성공 실패 여부가 아니라,
내게 어떤 목표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해서 제시하면 된다.
필사를 6월까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출력했다.
체크가 하나씩 쌓이는 것만 보일 게 아니라
A4 종이 한 장에, 그득하게 쌀이 쌓인 모습이 필요하다.
옆에서 보던 남편은
요즘 같은 세상을 운운하며 휴대폰 앱을 쓰라고 했다.
하지만 아날로그 인간답게,
그야말로 한눈에 딱 보이게 체크리스트를 출력했다.
그리고 매일 펜으로 체크를 하며 소소한 도파민에 춤추는 중이다.
6월 30일이 되면
한 장의 체크리스트가 완성된다.
그날, 내 도파민은
중간 단계 폭발을 맞이할 예정이다.
스스로 마음껏 기특해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시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체크리스트를 만들 것이다.
12월 31일에 완성된 체크리스트는
내게 램프의 지니가 되어 줄 것이다.
다시, 필사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