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안 해본 네가, 그런 건 어떻게 알았을까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아들의 연애를 응원하며

by 자몽

아들 이야기다.


만 13살, 미국에서는 7학년인 둘째가 얼마 전부터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아냐며 입을 달싹거렸다. 말을 하고는 싶은데, 말하면 쿨하지 못해 보여 그런 것인지, 엄마가 알게 되면 계속 놀려댈 게 걱정된 것인지, 단순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던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그런 세세한 감정까지 말하는 아이는 아니니까.


여하튼, 나는 몇 달 동안 이 말을 돌아가며 주구장창 들었다. "엄마, 내가 누구 좋아하는지 알아?"

"힌트 줄까?"

"아니야, 말 안 해줄 거야."




내가 영 감을 못 잡아서인지, 자신의 구미대로 내가 대꾸하지 않아서인지 아이는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형은 알아."


그래, 이쯤 되면 내가 맞춰야 하는 거다. 아니면 적어도 큰 아이에게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 거다. 힌트도 달라 조르고 졸라야 하는 거다.


누군지 예상은 슬쩍 갔다. "엘리 다녀?"내가 묻자, 아이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명색이 중학생인데 초등학생을 좋아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나 보다. 그래봤자 두세 살 차이일 텐데. 진짜 너의 짝은 지금 프리스쿨을 다닐지도, 혹은 대학교를 다닐지도 모를 일인데. 지금은 모르겠지.


"내가 아는 사람이야?" 묻자, 아이는 노코멘트하겠단다. 나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친구가 많은 아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죄다 남자아이들이랑만 논다. 학교에 어떤 친구들이랑 친한지 열 손가락을 네 번을 써서야 멈춘 아이지만 그 안에 여자아이 이름은 없었다. 그렇다면 빤하다. 배드민턴팀에 있겠지. 팀에서 중학생인 여자아이는 둘이다. 딱 둘밖에 없다. 그러니까 확률상 50%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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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집 세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중에 같은 주제가 또 나왔다. 지금이구나 싶어 첫째에게 물었다.

"쟤 누구 좋아해?" 뒤에서 둘째가 말하지 말라 아우성이다.

첫째가 큰 힌트라며 알파벳 중 하나만 알려주는데, 두 여자아이에게 다 들어있는 글자다. 이건 힌트를 주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다른 힌트를 달라 말했다. 그리고 첫째가 뭔가를 말했다. 사실 귀담아듣지도 않았고, 수많은 시답잖은 말 중에 하나겠거니 넘겼다. 얼핏 두 아이 중에 B구나~ 웃으며 농담을 했던 것도 같다.


그제 둘째만 태우고 가는 중에, 또 그 이야기가 나왔다. 역시나 입이 근질거리는지 나만 보면 그 주제를 입에 올린다. "엄마 이제 알잖아. 형이 다 말했잖아." 무슨 말이지? 아...., B? 농담인 줄 알았는데, 기어이 본인 입으로 이실직고 한 셈이다. 순간 아이의 표정이 후련해 보인다. 이제 할 말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기쁨도 묻어있다. 너무 오래 걸려서 좀 미안해졌다.




어제는 둘째 배드민턴 팀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끝나기 20분 전에 도착하니 마침 둘째가 그 여자아이랑 같이 파트너로 경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실수를 하자 여자아이가 약간의 잔소리를 하고, 아들은 즉시 사과를 한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세상에, 엄마한테나 좀 그러지. (내가 뭐라고 하면 자꾸 변명을 해서 종종 트러블이 생기는 편이다.)


돌아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그 주제가 나왔다. 몇 가지 대화를 하다 내가 물었다. "B는 어떤 남자아이를 좋아할까?" 공부 열심히 하는 남자, 혹은 책을 많이 읽는 아이를 좋아하면 좋겠다고, 게임 많이 하는 남자아이는 질색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아이가 뭘 좀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B의 엄마가 워낙 엄하니 그 집에서 허락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고까지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이렇게 답할 할 줄은 몰랐다.


엄마, 그건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 사람한테 맞춰서 바꾸는 건 진짜가 아니야. 가짜야.

나는 나를 바꾸고 싶지 않아. 그냥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날 거야.

B가 이런 내가 싫다고 하면 난 다른 사람을 찾을 거야.


놀랐다.

생각해보니 애 말이 맞다. 연애도 안 해본 것이 이런 건 어찌 알았을까? 평소에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살았던 걸까. 조금 생소하고, 조금 멋있었다.


그러게, 나는 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을까.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무식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영어 못하는 것도 들키지 않으려 했고, 못된 생각은 하지도 않은 척했고, 튀어나온 뱃살을 숨기기에 바빴던 것 같다. 어쩌면 남편에게 지금까지도 그런 것 같다.


나의 계획은 틀어졌지만, 멋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아이의 연애는 어떻게 될까. 누가 되었든, 너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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