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시작하려면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한 달? 두 달?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다.
내가 헬스장을 끊어야지 결심하고 아는 분 손잡고 구경을 간 게 2024년 말이다. 그날, 나는 게스트로 수업도 듣고 구석구석 구경도 했다. 아, 이번엔 진짜 해야지 결심했다.
근데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비록 전업주부라 낮에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노는 건 아니다. 월요일은 장을 보고, 주말에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고, 휴식을 취하며 일주일을 지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나머지 사일 중 이틀은 막내 학교에서 발론티어를 한다. 종일 가는 건 아니지만 고정으로 가다 보니 다른 걸 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럼 이틀이 남는다. 택배 리턴도 하고, 모자란 장을 더 보고, 도서관도 가고, 집을 치우면 어영부영 시간이 또 간다. 첫째는 오후 3시 전에 집에 돌아오기에 그전에 저녁도 만들어야 하고, 저녁 라이드가 많아서 에너지 충전도 필요하다.
시간은 잘 간다. 한 것도 없는데 5월이 됐다. 그럼 방학이다. 방학에는 아이들에게 묶여서 뭘 하기가 더 어렵다. 무려 3개월간의 긴긴 여름 방학이 지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나도 세 아이와 덩달아 적응하는데 정신을 쏟는다. 그간 못 만난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기도 하다. 개학하고 두 달이 지나면 핼러윈 시즌이다. 이때부터 연말까지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미국 전체가 그렇다. 11월 땡스기빙 휴일은 일주일이다. 헬스장을 끊기는 아까워진다. 12월엔 부모님 오셨다. 그렇게 연말이 되고, 새해가 되고,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제야 헬스장을 끊었다. 결심하고 실행하는 데까지 정확히 14개월이 걸린 셈이다. 얼마나 대단한 걸 하려고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냐는 말이다.
밀가루를 끊을까, 생각한 건 아주 순간이다.
입술이 부르텄는데, 그걸 잡아 뜯었다가 피딱지까지 크게 얹어지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퉁퉁해진 얼굴에 엄지손톱만 한 피딱지는 화룡점정이 되었다. 더 못생겨 보였다. 이 흉측한 것이 사라질 날만 기다렸는데, 미처 다 가라앉기도 전에 콧구멍 바로 아래에 또 하나가 났다. 그러더니 엉덩이에도 났다.
헬스장에 도착해 계단을 올라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 몸 안에 독소가 쌓일 대로 쌓여서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구나.'
'밀가루를 끊어볼까?' 괜찮은 생각 같았다.
'그래, 밀가루를 끊어보자. 한 달 하자고 생각하면 지레 힘들 수 있으니 딱 2주만 해보자.'
그렇게 순식간에 나는 '밀가루 끊기'를 시작한 사람이 되었다. 어차피 내가 결심하면 오래 걸릴 걸 아니까, 결심은 빼고 시작부터 했다. 내가 얼마나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생각하기 전에. 매일 아침마다 내가 먹은 게 바로 빵이라는 걸 깨닫기 전에. 밥 먹고 나면 습관처럼 팬트리에 들어가 간식을 찾았던 나를 돌아보기 전에. 종일 밀가루와 함께 해왔다는 걸 모를 때, 시작해 버린 거다.
그날 헬스장에서 '천국의 계단'에 다가갔을 때, 마주 본 트레드밀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반갑게 그녀와 인사를 나눴다. 나는 계단 위에서, 그녀는 트레드밀 위에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저, 오늘부터 밀가루를 끊었어요. 2주만 해보려고요." 내가 말하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저도 오늘부터 밀가루 끊기 시작했어요, 저는 한 달 하려고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
그녀 말로는, 예전에 한번 쓰러진 적이 있고 그때 이웃의 추천으로 밀가루를 끊었단다. 그때 밀가루 끊기가 효과가 크다는 걸 몸으로 느꼈단다. 역시 끊길 잘했다. (비록 짐에 오기 전에 빵을 먹었지만,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뭐 하지만)
그녀가 다시 말을 잇는다. "저는 그래서 오늘 아침에 계란 5개 삶았어요."
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나도 아침에 정확히 계란 5개를 삶았으니까. 내가 나도 5개를 삶았고, 그중 하나를 도시락에 싸서 4개가 남았다고 하자 그녀도 똑같다 말했다. 우리는 마주 보고 한참 웃었다.
그날이 목요일이었고, 지금은 월요일이다. 5일 차다.
생각보다 나는 밀가루 중독이 심했던 모양인지, 며칠간 우울했다. 과자를 못 먹는다 생각하니, 빵은 금자라 생각하니 먹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졌다. 배는 고픈데 밀가루를 먹을 순 없으니 기분이 몹시 나빴다. 샐러드는 꼴도 보기 싫고, 고기도 먹고 싶지 않았다. 기껏 밀가루를 끊었는데, 몸에 나쁜 다른 것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더 그랬다. (감자튀김 같은)
그래도 고비는 넘긴 모양이다. 밀가루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걸 찾아 나섰다. 그럴 의지가 생겼다. 지금도 스타벅스에 앉아있는데, 모르는 여자분이 피스타치오를 한 움큼 건네준다. 점심도 먹기 전인데 배가 부르다. 여기저기서 도와주니 아무래도 진짜로 나는 2주간 밀가루를 끊을 모양이다.
해본 사람들 말로는 2주만 해도 달라진 걸 느낀다는데, 얼마나 변하려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