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서 적어보는 글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했던 엄마의 영향일까(엄마는 '저 사람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니면 원래부터 따지기 좋아하던 나의 성격 탓일까.
나는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 강했던 사람이고, 상대가 반대 의견을 말하면 나를 공격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반발했다. 표정으로든 말로든. 날이 서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 말을 들은 거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을.
이 별것 아닌 한 문장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서.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순간 내 손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동안 갈고닦은 날카로운 '날'이 툭 떨어졌다. 더 이상 날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세상 모든 게 그럴 수도 있으니까. 정답은 없는 거니까.
이후 남편이 그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똑같이 말을 뱉을 때도 그 순간이 떠오르곤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은 후 17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말의 힘을 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고, 내가 생각한 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다.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뜻이다.
만약 누군가가 한 말이 기분이 나쁘다면 일단 생각해 보자.
악의를 가지고 나를 해하려고 하는 말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기분 나쁠 것 없다. 그럴 수 있는 거다. 그 말을 꺼낸 것도 용기이고, 그것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말을 꺼내준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자. 그리고 말해보자.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생각하면 별것 아니다.
그리고 실제 말로 뱉어보면 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행복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