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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Jun 19. 2018

포박된 시선들

영화 <디트로이트>를 보게 되어 씀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까. 1967년 7월 디트로이트 사태를 간접적으로도 겪어 보지 않은 내가? 영화에 긴장감이 짙게 배어 있긴 하다. 그래도 그날 디트로이트에 그만큼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지는 모를 일이 아닌가.


영화는 길다. 그만큼 그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그 밤도 길었을 것이다. 그 밤이 끝나도록 모텔에 갇혀 인종차별 백인 경찰에게 없는 죄를 추궁받는 흑인들은 계속해서 벽을 쳐다본다. 눈을 돌리면 뚝배기를 깨버린다는 데 별 수가 없다. 이렇게 영화 내내 피해자들의 시선은 포박당한다. 그러니 경찰에게 끌려 간 친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고, 공포는 계속해서 불어난다. 시선은 정보를 얻는 도구인 동시에 신호를 보내는 도구이기도 한데, 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그나마 우호적인 흑인 경비원이 옆에 와도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 밤은 길고 어두운데, 출구가 없다.

눈알을 돌리면 뚝배기를 깨버린다는 협박이 떨어지고, 이제 그들에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밖에도 피해자들은 쫓아오는 경찰들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지도 모르는 채 달려야 하고, 총을 맞은 뒤에는 차 밑에 숨어서 하늘을 보지 못하고 죽기도 한다. 그는 죽으면서 이웃 주민에게 아내를 불러달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그 부탁을 들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사람이 눈에 안 보인다고 말하면 풀어준단다

알 수 없음과 어쩔 수 없음, 시선을 포박당하는 것은 그러나 이 이상을 의미한다.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경찰에게 그들은 눈빛으로라도 싫은 티를 낼 수가 없다.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때는 눈빛으로라도 좀 개겨야 스스로에게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정도 자기 위안도 불가능하다.


흑인 배우와 백인 배우는 눈빛이 다르다. 똑같이 취조를 받기 위해 소환된 상황이라도. 눈을 깔 것을 종용받을 때 찾아오는 공포와 절망과 무기력이 이 영화에 현장감을 더한다는 말은 그래서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은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아주 좆됐다는 표정과 까볼테면 한 번 까보라는 표정


긴 영화, 그리고 보면서도 길다고 생각하게 되는 영화.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을 지나는 것 같은 경험을 잘 전하는 영화다. 그 밤은 끝났는데, 끝나지 않는 밤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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