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일요일,
기상청에서는 오전에는 잠깐 비가 오겠지만,
오후에는 구름 낀 흐린 날씨가 되겠다고 예보했다.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하는데, 우중충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심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을까, 이렇게나 흐린데. 우산을 챙길까 말까 갈팡질팡, 고민 끝에 결국 기상청을 믿지 못하고 우산을 챙겨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은 아무리 흐려도 물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는 날씨에 괜히 가져왔다는 후회, 그리고 결국 술에 취해 새것과 다름없는 우산을 잃어버렸을 때의 후회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술은 점점 발전해 예전과는 달리 기상청 일기예보도 정확해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상청의 기술이 아닌 나의 어림짐작을 택했다.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잘못된 판단, 그로 인해 손해 본 우산 값 만 원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기상청을 왜 못 믿게 되었나.
기상청 일기예보의 신용도에 대한 못 미더움은 꽤 오래 묵은 편견이다. 구름 낀 하늘이 되겠다는 국가기관 기상청의 말보다는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꾸리꾸리한 잿빛 하늘이 더 미심쩍고, 또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의 무릎이 보내는 신호를 더 믿기도 하지 않는가.
2021년, 유튜브 채널 ‘너덜트NERDULT’에 「강수 확률 50%」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한 남자가 외출 준비를 하며 일기예보를 틀어놓았다. 오늘의 날씨는 맑을까, 아니면 비가 올까. 비가 많이 오면 장우산을 챙길지, 우비까지 챙겨야 할지, 그냥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라면 장우산 대신 접이식 우산으로 짐을 가볍게 할지 남자는 고민한다. 하지만 그날따라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일기예보에 보다 못한 남자는, 결국에는 전화로 어머니에게 비가 올 것인지를 물어본다.
이 영상뿐만 아니라, 기상청 체육대회 날 비가 왔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웹을 통해 퍼진 것도 기상청을 못 믿게 된 데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물론, 일각에서는 체육대회를 하기 싫은 기상청 직원들이 일부러 비 오는 날로 잡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쨌든, 인터넷에서 본 시시껄렁한 유머가 나의 편견을 강화해 준 꼴이었다.
기상청은 정확하지 않다고.
한 번 인식된 선입견을 다시 바꾸는 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그 선입견이 인식되었을 시점에는 정설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선입견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스스로의 이익이나 삶에 문제가 생긴다면 모두가 기꺼이 바꾸겠지만, 내 인생에 아주 미미한 영향을 주는 선입견이라면 더욱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때로는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선입견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행운도 따라줘야 할 것이다.
편견에 관한 또 다른 개인적인 일화가 떠오른다. 이 역시 날씨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미용실에 펌을 예약한 날이었는데, 하필이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비 오는 날에는 미용실을 가면 안 좋다는 ─ 정확히 말하면 비 오는 날 하는 파마는 맑은 날보다 약해진다는 ─ 이야기가 정설이었다. 때문에 요일 중에 한자로 물 수[水]를 쓰는 수요일에 쉬는 미용실도 많았다. 이제 와서 예약을 취소하기는 난감했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예약한 시술을 받았는데, 받을 때 미용사분께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요즘도 비 오는 날에 파마하면 파마가 약해지냐고. 돌아온 것은 요즘은 파마에 쓰는 약품이 다 좋아져서 날씨에 영향이 전혀 없다는 답변이었다. 오래전 굳어져 버린 선입견 때문에 나는 아주 잠시였어도 괜히 걱정했던 것이었다.
시대의 변화, 기술의 발전, 내가 지금까지 기상청에 대해 가졌던 편향된 사고를 알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기상청을 못 믿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기상청이 아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이제는 조금 믿어도 되는데, 마른하늘에도 소나기가 떨어지고, 곧 비가 쏟아질 거 같은 먹구름 낀 날에도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날씨를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 아니면, 아주 희박한 가능성으로 비가 쏟아졌을 때, 쫄딱 젖기 싫어서 그런 걸까.
축축함과 번거로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 오늘도 나는 어림짐작만으로 우산을 챙겨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