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블랙아웃 (3)

[인생의 중간즘]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라

by 텍스트솔트

사고 이후 한 달 반 뒤 회사에 복귀했다.

그동안 꾸준한 걷기와 간단한 조깅으로 몸을 조금씩 움직여 왔다.

그럭저럭 괜찮아진 느낌이지만 사고 이전과의 확연한 몸의 차이점은 아직 남아 있었다.

말할때 불규칙하게 버퍼링이 생긴다는 것,

웃음을 참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침이나 무언가를 깨끗하게 삼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다소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과

이런 후유증은 사고와는 무관하다는 의사 소견을 믿고

일단 회사로 복귀하면서 챙겨가기로 마음먹었다.


공백 기간에 발생한 일들이 회사와 팀 조직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수습하고,

다른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외관상 이전과는 다를 게 없어서 그런지 모두들 없던 것처럼

일에 집중하는 이전 업무 모드로 진입해 갔다.





일터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후 회사에서의 역할과 업무 수행은 이전과 동일하게 흘러갔지만

몸을 움직이는 내 마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에 복귀한 이후에도 나는 일부러 차를 두고 전철로 통근 했다.

많이 걷기 위함이었다.

몇 달간 몸을 움직여 가면서 나의 몸상태를 꾸준히 체크해 나갔다.

지하철 밖으로 나와 회사로 걸어가는 새벽하늘은 감사함으로 충만했다.

많이 회복되어 걷고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만으로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에 틈틈히 짬을 내서 홀로 산책을 했다.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나는 노래도 흥얼거려 보았다.

사고 이전에 산책했을 때의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산책 중간에 한참을 멈춰서 호흡을 길게 쉬어 본다.

온몸에 여백이 들어온다. 먼가 다시 생기를 되찾는 느낌이었다.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는 여유가 좀 생긴 것도 변화 중 하나다.

사업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가졌던 스트레스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명확히 보였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했다.

'이건 내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야.

죽다 살았는데... 별거 있어?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심각한 시선을 내려놓고 차분히 객관적으로 보니

내가 건강한 상태여야 바른 판단과 추진,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다.

정상적인 움직임과 인지 상태를 위해서

반신욕과 맨몸 운동, 스피치 훈련을 매우 조금씩 추진해 보았다.

무리하지 않았다.

KPI처럼 대단한 성과를 위해서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정도에서만 진행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 4시 반이면 눈이 떠지는데,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싶으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더 잤다.

정말 몸이 가는 대로, 원하는 대로 진행했다.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회복하기 위해 나의 몸을 먼저 챙기기 시작한 것이

일 중심의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준 것 같다.

일에 일단 몰입하면 내 몸을 챙기지 못했던 습관에서 변화가 생겼고,

사고가 없었다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압박하는 마음을 이젠 던져 버린다.

일의 상황과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인드는 동일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인정할 때

자책하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블랙아웃 사건은

일에 대한 태도와 삶에 대해 이전과 다른 궤도로

나를 인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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