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즘] 온전한 나로 온전한 일상을 누리는 우선순위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분명 운전하고 있었다. 흐릿하지도 않다. 아예 필름이 끊겼다고나 할까. 내 앞에 와이프가 울면서 부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했던 화면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대략 정황을 보니 응급실이었다. 나는 호흡기와 소변줄을 달고 있었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와이프와 간호사가 의식을 빨리 찾게 도우려는지,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였다. 질문을 하고 더듬더듬 내가 대답을 했다. 입과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답변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당시 확실하게 이해한 정황은 “사고”였다. 여행 간 호텔에서 제공하는 가족 사우나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고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오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호텔로 가는 운전의 시선까지만 기억이 있고, 이후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다. 정말 블랙아웃이었다.
그 와중에 내뱉은 말이 가관이었다.
- 내일 출근 못하겠는데....
지금 내 꼴을 보니 해야 할 일, 맡은 일들에 대한 마음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에 대한 인정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했고, 사고를 당했고, 몸은 망가졌고, 건강 회복이라는 긴급조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터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가족과 일상을 즐기는 집이 너무 그리웠고, 마음 한편으로는 정상적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 찼다. 가족들의 사랑과 회사 및 지인들의 격려로 희망의 끊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줄을 붙들어맸다.
2주간의 응급실과 병원 생활은 혼돈 그 자체였고,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총력의 시간이었다. CT 결과가 좋아서 3일 만에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머리 안에 고여 있던 피는 기적적으로 머리뼈가 모두 흡수해서 수술을 피하게 되었고, 하루하루 몸 상태는 호전되었다. 살아나려고 뼈가 스스로 일했나 보다. 매일 아침 병실의 침대에서 눈을 뜰 때마다 이게 현실인가 놀라기도 하고, 현실 체감 후에는 감사하기도 한 복잡한 심정이었다. 또한 갑작스럽게 시작된 병원 생활은 너무나 생소했다. 여태껏 입원해 본 경험도 없었고, 병원생활을 할 것이라는 예측도 못한 입원이어서 그런지 막막한 마음뿐이었다.
- 빨리 회복해서 집과 회사로 복귀해야지.
어지러움 증상이 있어 움직임이 느렸고, 손과 발이 마비된 듯 잘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말하기가 문제였다. 발음이 새고, 말이 어눌할 뿐만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버퍼링 상태가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다.
- 이러다가 정말 정상으로 회복 못하는 거 아닐까.
바로 한 달 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걱정이 크게 앞섰다. 어떻게 하면 현 상황에서 빨리 회복할까.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빨리 결론났다.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잘 먹고, 잘 자고, 쉬는 것이었다. 불안의 마음과 불확실한 우려 등 모든 생각을 접고, 몸의 구석구석을 스캔하며 회복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조금이라도 졸리면 바로 잠을 잤다. 바운드된 정신을 빨리 궤도로 돌리기 위해서 병실 침대에 있을 땐 책을 펼쳐 읽고, 정리하면서 정신줄을 다듬었다. 조금씩 움직여 보려고, 테스트하듯이 병원 주변부터 산책하면서 몸의 모든 감각을 점검했다.
시간이 흘러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건강에 이슈가 발생하여 입원한 환자분들은 고통의 문제 속에서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회복하여 퇴원한다면 다신 자신의 건강을 소홀하지 않으리라, 사고 예방을 위해 모든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이를 갈고 선포하느라 난리다. 나도 이에 동조하였다. 정상으로 회복하고 퇴원한다면 절대 내 몸에 소홀하지 않으며, 안전 주의에 만전을 다하리라 결심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기도 하다.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왜 사고가 발생한 이때 다시 굳은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일까.
블랙아웃을 통해서 내 안의 작은 변화가 생겼다. 삶의 우선순위를 '나에게 최우선으로 맞추는 것'이다. 퇴원 이후에도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쉬었다. '멈춤'이 필요하다면 멈추는 것을 선택했다. 주말엔 졸리면 잤다. 나의 몸을 축내는 활동은 피하게 되었다. 나의 안위를 위해서 일상 속 사고 예방에 더 신경 쓰게 되었고 건강에 유익한 음식과 재료를 찾아서 먹게 되었다. 건강을 잃고 다시 결심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으로 '나 우선순위'로 방점을 바꾸었다. 그래야 가족들도 모두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사고 전에는 나를 잘 챙기지 않았는가? 아니다. 잘 챙겼다. 그러나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내가 나를 일으켜 세워 놓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블랙아웃을 통해서 철저히 깨달았다. 온전한 내 상태로 온전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했음을 이제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