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 죽이기
지루하며 반복되는 삶. 어제와 오늘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방구석에 무질서하게 쌓인 담배꽁초의 높이뿐입니다. 창밖의 태양은 뜨고 지기를 반복하며 세상을 물들이지만, 나의 방 안은 언제나 창백한 저녁의 농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여서 썩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어떠한 '특별한 일' 따위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루함이 반복됩니다. 이 고요는 평화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에게 가해지는 침묵의 폭력에 가깝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오면 그것은 규칙적인 단두대소리처럼 들리곤 합니다. 1초에 한 번씩 나의 생을 베어내지만, 정작 죽음은 오지 않고 무거운 시간만 겹겹이 쌓여 저를 누릅니다.
잠깐. 아주 잠깐 '특별한 일'과 비슷한 무언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외풍에 불과합니다. 낯선 이의 안부 인사나 화면 속의 소란스러운 소식들은 지루함을 잠깐 잠재울 뿐, 죽이지는 못합니다. 파동이 멈추면 지루함은 더욱 깊고 진한 수렁이 되어 다시 제 발목을 잡아챕니다. 저는 이 늪에서 벗어날 의지조차 상실한 채 서서히 침전되어 갑니다.
애써 죽이지 못하는 지루함에 대해서 저는 어떻게 정의를 해야만 할까요. 차라리 명확한 슬픔이나 고통이라면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지루함은 비명을 지를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서서히 저의 산소를 뺏어갑니다.
스스로를 이 권태로부터 구원하지 못하는 저의 상태를 '무능함에서 비롯된 자비로움'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연후, 저는 제 무능함에 울어야 합니까. 아니면 제 자비로움에 웃어야 합니까.
지루함을 부술 칼날조차 쥐지 못하는 무능이, 역설적으로 저를 이 안전한 지옥에 머물게 하는 자비가 된 것입니까.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겪을지도 모를 실패와 상처로부터 저를 보호하기 위해 삶이 저를 이 지루함 속에 가두어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비정한 배려입니까.
저의 비극은 너무나 평범해서 눈물조차 아깝고, 저의 안온함은 너무나 비참해서 웃음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울음과 웃음 그 어느 쪽으로도 발을 떼지 못한 채, 저는 무능과 자비가 엉겨 붙은 이 지루한 연극을 오늘도 묵묵히 관람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루함이란 죽지 못해 남겨진 시간들의 시체이며, 저는 그 시체들을 치우는 대신 그 속에 몸을 눕혀 살아있음을 연기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