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감설 :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때로는 영화적 쾌감이 아니라 현실적 공감을 유발한다.

by WOWIMOLD

나는 A24 작품들은 믿고 보는 편이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영화 <엑스 마키나>, <더 랍스터>,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 그리고 TV 시리즈 <유포리아>, <성난 사람들>, <동조자> 등 재기 발랄하면서도 묵직함을 놓지 않은 라인업들을 통해 형성된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이하 '<시빌 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현실적이고 흥미진진한 떡밥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래의 포스터 이미지를 처음 본 작년 언제쯤부터였던 것 같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포스터


나는 멀게는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부터 최근에는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 <더 맨 인 더 하이 캐슬>에 이르는 디스토피아적 '대체 역사물'을 좋아한다. 실제로 발생한 역사적 사실은 결코 돌이킬 수는 없지만, 창작에 기반한 가상의 현실은 그저 즐기면 그만이다. 저지른 적 없는 잘못에 대한 복기를 통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는 것은 덤이다. <시빌 워>와 다른 듯 같은 느낌의 <더 맨 인 더 하이 캐슬>의 포스터 이미지도 소개한다. (뉴욕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인 것 같다.)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 <더 맨 인 더 하이 캐슬> 포스터


<시빌 워>는 국내 개봉이 조금 늦긴 했지만, 최근 나라 상황으로 인해 관객수 대비 화제성이 높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해당 작품의 리뷰나 분석, 기사 등은 이미 충분히 나온 것으로 보여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파편적인 감상평 몇 가지에 그치고자 한다.


첫째, 이 작품은 기자들의 로드 무비다.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워킹데드>의 어느 시즌처럼 목가적이면서 을씨년스럽고, 쓸쓸하다가 번잡스럽고, 고요하다가 시끌벅적한 여정을 함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포격, 총격, 저격 등의 밀리터리 액션 장면들이 서운할 정도는 아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 컷


둘째, 극 중 상황과 대사들이 때로는 영화적 쾌감이 아니라 현실적 공감을 유발한다. 분노, 안타까움, 미안함, 거부감, 부끄러움 등과 같은 감정이 그것이다. 아래와 같은 몇몇 대사들을 꼽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지난 몇 주 동안 태어나서 가장 무서웠어요. 그런데 가장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 제시 (케일리 스페니)가 리 (커스틴 던스트)에게 건네는 말. (* 정확한 대사와 자막이 기억나지 않네요. 알고 계신 분께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쪽 미국인?

- 정부군 병사 (제시 플레먼스)가 기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네, 그걸로 충분해요.

- 조엘 (와그너 모라)의 마지막 대사. ("Yeah, that'll do")


셋째, A24다운 장난 없는 설정이 펼쳐진다. 극 중 미국 대통령은 3선 개헌, FBI 해체, 민간인 폭격, 기자 살상 등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자행하여 미국이 내전에 휩싸인다. 아프가니스탄도, 이라크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미국 본토에서 미군끼리, 미국 국민들끼리 서로 싸우는 광경들을 마주한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예고편


미국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겪었고, 우리도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을 겪었다. 겪음은 곧 경험이고, 경험은 역사와 교훈으로 남는다. 국가와 민족의 아픈 역사에 끊임없이 몇 주년이라는 의미를 계속 부여하는 것은, 기억하고 되풀이되도록 하지 말자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들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었고, 다시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다. 과거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랬듯이, 후대의 이들에게 교훈들을 전해주자. 아마 <시빌 워>의 기자들이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도 용기 내어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은 이유도 그랬을 것이다.


* 콘텐츠 감설(鑑說) : 영화, 드라마, 음악, 공연, 전시 등의 '콘텐츠를 경험하고 작가만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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