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봄은 '바닐라 라떼'로 시작이 된다.
지금의 나는 바닐라 라떼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해마다 추위의 끝자락에 닿을 때쯤, 바닐라 라떼가 입덧마냥 당긴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산수유 꽃이 얼굴을 내밀어 놨다.
어김없이 봄이다.
아마도 머리보다 감각이 먼저 봄을 알아차리기 때문인 듯하다.
추측컨대, 미묘하게 달라지는 공기의 냄새가 가장 붙잡아두고 싶은 시절의 습관을 불러오는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의 봄에는 나는 늘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연애를, 2학년 때는 공모전을, 3학년 때는 전공 공부를..
나는 재수 끝에 마음속 하한선 대학에 입학했다.
그럼에도 예상과 달리 학교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이래저래 바쁜 일상도 좋았고, 공항철도로 한강을 건너는 서울까지의 통학길도 즐거웠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봄날의 학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항상 설렘이 가득했다.
학교 언덕길의 유난히 향긋한 커피 향, 그 나이 때만 입을 수 있었던 원피스와 핑크색 재킷, 그리고 해마다 고심해서 고르던 파스텔톤 플래너.
전공 수업을 듣는 날이면 늘 바닐라 라떼를 사서 강의실로 향하곤 했는데, 전공 강의실 앞 벚나무에서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날의 풍경이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다.
아들이 색깔에 관심을 가질 즈음,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뭔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아이가 어느 날 문득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햇빛 받은 봄날의 초록색'이라고 답했었다.
스무 살 언저리의 그 시절은 나에게 '햇빛 받은 봄날의 초록색'과 같은 시간이었다.
자라나기 바쁘다가 처음 싹을 틔워 본 딱 그런 순간 말이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날이다.
출근길에 남편이 묻는다.
"바닐라 라떼 사줄까?"
스물한 살 이후로 나는 봄이 습관처럼 설렌다.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어린 날을 여유롭게 추억하는 예쁜 아줌마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봄에 겨워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면서도 설렘만큼이나 당분 걱정을 해야 하는 나는, 애석하게도 뚱땡이 아줌마다.
'바닷빛 실타래'의 시작은 엉킨 살덩이부터 풀어나가보자는 결심이었다.
열다섯 번째 글에 와서야 고백하건대, 살.. 안 빠졌다.
다이어트에 실패한 건 아니다.
나는 아직 다이어트를 끝낸 적이 없으므로.
아무튼 나는 삼십 대 중반의, 뚱뚱한, 아줌마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봄날의 치솟는 의욕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봄에 소소한 무언가라도 꼭 시작하는 편이다.
뜨개질이라던가, 책 읽기라던가, 공부라던가 하는.. 뭐라도 말이다.
작년과 재작년의 봄에는 수능 문제집을 폈다.
십수 년 만에 다시 시작한 수험생활의 목표는 약학대학이었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공부를 시작하던 두 번의 봄은 반짝였다.
어느 날엔가, 어렵던 문제들이 술술 풀리는 바람에 몇 시간 연이어 집중을 했던 적이 있다.
문득 뻐근한 고개를 들었는데, 창문으로 들이치는 봄볕에 기분이 좋아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사진을 남기기도 했었다.
실패는 꽤나 씁쓸했지만, 그래도 '햇빛 받은 봄날의 초록'으로 추억할 시간이 더해졌다.
나는 뚱뚱하지만 게으르진 않다.
아니, 주부로서는 게으른 게 맞다.
그러니까, 민첩한 살림꾼이라기보단 끊임없이 사부작대며 일을 벌이는 둔탱이에 가깝다.
사시사철 겨울잠에서 깬 봄날의 곰 같음, 그게 나다.
다시 돌아온 봄.
고로, 지금은 나의 계절이다.
2년간의 관성 때문인지, 올봄에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올해는 첫 바닐라 라떼와 함께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2년간 공부하느라 못 했던 봄 소품 뜨개질도 시작했다.
나는 도무지 살을 못 빼는 곰 같은 아줌마가 되었다.
하지만 봄볕을 쫓는 마음만은 여전히 '햇빛 받은 봄날의 초록'이다.
그러니 만약 이 글이 유달리 부산스럽다면, 그건 아마 제 계절을 맞은 봄날의 곰이 한껏 들떠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