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어린이는 2018년생 개띠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개를 키우는 느낌이다.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칭찬에는 눈에 띄게 들뜨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의외로 금방 털고 일어난다. 대신 가만히만 두면 남는 에너지가 집안을 휘젓는다.”
이는 골든 리트리버의 특성이라는데, 그 아이를 설명하자면 정확히 이와 같다.
책장 가장 높은 칸에서 태교 일기를 발견했다.
전형적으로 태교 일기스러운 내용들 가운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세상을 궁금해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지금도 한결같이 바라는 바였기에 반가웠다.
세상이 궁금한 사람의 눈은 항상 반짝일테니.
아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한번 배우기 시작하면 꾸준히 즐기며 배운다.
(아, 공부하는 학습지만큼은 절대적 예외다.)
레벨업 하는 재미를 느끼는게 보여서 기특한 한편으로, 부작용도 있긴 하다.
태권도 품새 진도를 나갈때 마다 "엄마, 봐봐!" 무한 반복.
축구 스킬을 하나 익힐 때 마다 "아빠, 봐봐!" 무한 반복.
보여 줄 것도, 보여 줄 사람도 너무너무 많아서 바쁜 아이다.
조금 정신 사납긴 하지만, 아들의 눈은 확실히 반짝이고 있다.
작년 여름, 워터파크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게릴라 이벤트로 수영 대회가 열렸다.
연령대별로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그 때쯤 아들은 수영 학원에서 자유형을 이제 막 끝내고 배영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그저 농담으로 아들에게 물었다.
"너도 저기 참가할래?"
그런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돌아온 대답.
"응. 할래."
난데없는 비장함에 나는 괜히 다급해졌다.
그래서 냅다 튀어 나온 말이라는게.
"꼴찌하면 어떡해? 그래도 할거야?"
뱉는 순간 스스로의 찌질함이 좌절스러웠으나 어쩔수가 없다.
막상 아들이 참가 하겠다고 나서니, 내가 지레 겁을 먹어 버린거다.
뭐가 두려웠던걸까.
꼴찌할까봐? 다칠까봐? 아니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낯설어서?
그런데 아들은 오히려 한 층 더 비장하게 말했다.
"응. 꼴찌해도 할거야."
그 날 아들은 중간 정도의 순위로 완주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나는 궁금했다.
그 마음은 도전이었을지, 호기심이었을지 다른 어떤 의미였을지.
아들에게 무슨 마음으로 하겠다고 한건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냥' 이었다.
행동 하나에 수십가지의 고민을 거쳐야 하는 나에게 '그냥' 움직이는 사내아이의 세상은 미지의 세계나 다름 없었다.
나는 어릴 적 운동회 때 달리기 출발선에 서서 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순간의 기분과, 시선을 받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그때의 내가 떠올라 생각이 많아졌다.
아들을 잘 키우려면 엄마가 더 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걸까, 들키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확실한건, 쫄보는 그 옛날의 출발선에서보다 훨씬 용감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들은 피아노로 꼭 치고 싶은 곡이 있어서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한다.
방학동안 그린 그림을 선생님께 자랑하기 위해 전에 들었던 방과후 미술 수업을 다시 신청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제에 가면 꼭 스노클링을 배워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직접 보겠다고 한다.
나는 자꾸만 아들이 한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 처럼 느껴진다.
온 세상을 킁킁거리며 흥미로운 걸 찾아다니는.
그리고 그 모습이 엄마로서 퍽 마음에 든다.
아들은 고민하느라 지레 지치기 일쑤인 나보다 세상을 훨씬 알차게 즐길 것 같다.
머지않아 닥칠 사춘기에 이 사랑스러운 리트리버를 잃어버릴 위기가 온다면, 나는 꼭 아들에게 이 글을 꺼내어 보여주리라.
나는 네가 눈이 반짝이는 개 같은 어른으로 크는 것을 응원한다고.
그리고 나는 그 그림자가 닿는 곳에 쫄보의 최대치로 용맹하게 서 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