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유쾌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전 글들을 읽다가 내린 결론이다.
내 글을 읽는 몇몇 주변사람들로부터 의아한 평을 들었다.
'재미있다' 혹은 '웃기다' 라는.
고마운 감상이지만 의문이 앞섰다.
나는 내가 '밝지만 재미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의하는 나의 '밝음'은 쨍한 화려함보단 햇빛이 닿는 자리의 밝음 정도다.
그러니 나의 글이 우중충하지야 않겠지만 재미라는 말은 낯설 수 밖에.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이전 글들을 읽어봤다.
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내 얘기를 남 얘기하는 느낌으로 쓰는 버릇이 있는 듯 했다.
그게 재미있는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발견한 습관이 적어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가 '유쾌한 사람'이기를 꿈꿔왔기에.
내가 생각하는 유쾌함의 조건은 거리조절이다.
그런데 나는 늘상 거리조절에 실패하는 편이다.
며칠 전, 옷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 서너번 입고 넣어둔 점퍼를 찾았다.
30kg쯤 살을 덜어내지 않으면 팔 하나 겨우 욱여넣는게 최선인 그런 옷이었다.
내 다이어트 목표는 40kg 감량.
장난같은 숫자다.
나는 목표달성이 빠를지, 옷이 삭아버리는게 빠를지 저울질을 하다가 나눔을 결심했다.
마침 옷이 잘 어울릴것 같은 동네 언니가 떠올랐다.
나의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물어볼까, 말까.
거절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괜히 불편하게 만드는건 아닌가.
혼자만의 우여곡절 끝에 긍정적인 반응을 듣고, 옷을 건냈다.
이제 또 다른 단계의 걱정 시작.
안 입어보고 가져갔는데 안맞으면 어쩌지.
장식 떨어진 부분을 내가 발견 못하고 줬으면 어쩌지.
주머니 비울때 빼먹은건 없겠지.
... 쓰고보니 좀 병적이다.
이래서 나는 글이 필요하다.
아무튼.
언니, 이거 어때요?
맘에 든다니 좋네요.
입을 때 기분좋은 옷이면 좋겠어요.
이 담백함이 내가 바라는 전부인데, 나는 그 간단한게 어려운 인간이다.
항상 심각한 나는 '유쾌한 사람'이 늘 부러웠다.
그런데 다름아닌 나의 글에서 발견한거다.
한 걸음 떨어질 줄 아는 내 모습을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내 글을 다시 읽는건 녹화된 일상을 구경하는 느낌이지, 다시 감상에 젖을 일기를 들춰보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생활 속의 나보다 글을 쓰는 내가 조금 더 담백하게 느껴진다.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현실에서의 나는 늘 힘껏 좋아하고, 힘껏 미워하느라 중간에 서 있는 법이 없다.
그런데 글을 쓰는 나는 관전할 줄 알고, 조금은 방관할 줄도 아는 것 같다.
요즘에야 비로소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던 참이었는데, 그 때문이었을지도.
거제로의 이사가 불발되더라도, 덕분에 글쓰기를 시작한 요즘이 나에겐 일종의 전환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재미있을지는 다시 읽어봐도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글을 통해 나를 관찰하고 발견해나가는 요즘이, 나는 재미가 있긴 하다.
나는 아직 유쾌한 인간은 아니지만
유쾌함의 씨앗을 품은 인간이다.
오늘도 이렇게 기어코 만족할 거리 하나를 찾아내고야 마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