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배추 겉절이의 무게 (feat. 모녀지정)

by ONDI

나는 게으른 주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뛰어난 타협 능력으로 집이 돼지 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간신히 유지하는 중이다.


요리도 안 좋아한다.

준비부터 정리까지 귀찮지 않은 구석이 없다.

그런데 또, 요리를 못 하는건 아니다.

실험실에서 프로토콜을 보고 실험하던 것처럼 레시피를 보고 실험정신으로 요리라는 행위를 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나름 먹을만한 결과물이 탄생한다.


최근의 일이다.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는데 목록의 절반 이상이 배달 음식이었다.

빼곡한 숫자들이 철 없음에 대한 증명처럼 느껴져 눈이 질끈 감겼다.

보는 값이나 그냥 배달음식 값이나 그게 그거라고 합리화하던 논리가 마침내 양심에 무릎 꿇는 순간이었다.


당분간 주방에서만큼은 귀찮음을 감수해 보기로 했다.


내가 결혼 만 9년차에 처음으로 배추 겉절이를 만들게 된 배경은 그러하다.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여느때처럼 '대박'은 아니지만 '먹을만한' 겉절이가 완성됐다.


겉절이 한 조각을 맛본 아빠가 물었다.

"너 이사 가는 연습하는거냐?"


김치를 만들게 된 배경은 이사와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솔직히 만들면서 그 생각을 안한 건 아니다.

정확히는 '이사 가는 연습'이라기보단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 쪽에 가까웠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익은 김치를 안먹는다.

어쩌다 사 먹는 김치도 익어버리면 손도 안 대기 일쑤라서, 같은 단지에 사는 친정엄마가 자주 겉절이를 만들어 주신다.


생각해보면 독립한 자식과 엄마의 사이에서 김치는 심심찮게 메신저 역할을 한다.

반찬 중에서도 필수이자 기본인 김치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엄마는 딸의 생활을 응원한다.


무뚝뚝한 우리 엄마는 그런 간지러운 뜻 따위는 없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김치를 해주는 엄마의 의도는 내 몫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니까,

나는 그것을 '응원'으로 받는다.




우리 엄마는 자타공인 유난(?)스럽기로 1등인 엄마다.


자식 일이라면 '힘 닿는데까지' 풀 악셀 밟아 버리는 엄마의 지원이, 때로는 간섭으로 와 닿기도 했다.

그래서 사춘기는 육탄전을 버리다가 코피가 터질 정도로 처절했고, 20대에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내가 엄마를 허무하리만큼 한 방에 이해하게 된 계기는 '출산'이었다.

'너도 애 낳아보면 알아.'

이 얼마나 진부한 대사인가.

그러나 이제 와 보니 진부하리만치 정답인 말이었다.


독립을 꿈꿨던 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오히려 엄마에게 엉겨 붙었다.

실질적인 육아 도움도 필요했지만, 낯선 걱정과 불안을 공감하고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친정 엄마와 함께하는 육아가 벌써 9년차에 접어든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방식을 쫓을 것을, 또 다른 면에서는 엄마와 다를 것을 다짐한다.

어쨌든 내가 양육 방식에 주관을 가질 수 있는 건, 내 엄마의 치열한 '엄마 노릇'이 가이드가 되어주는 덕분이다.

나는 그 치열함이 얼마나 버거웠을지 조금씩 체감해가는 중이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말한다.

'너는 나와는 다르게 키워보라'고.


한나절을 차로 꼬박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의 이사는 모두에게 연습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결국은 모두가 적응할테지만, 가끔 엄마가 '애증'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우리 모녀의 관계에서는 그 과정이 조금 더 복잡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좀 덜 낭비해보려고 만든 나의 첫 배추 겉절이가,

완성하고보니 꽤나 묵직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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