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라는 게 그렇다.
멈춰있는 상태라면 마찰 같은 건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움직이려고 힘을 쓰기 시작하면 그제야 그 반발력이 체감이 되고 만다.
언제부터인지 부부싸움이 드물어졌었다.
평화로워서라기보단 '싸움씩이나' 할 기력이 없었던 것 같다.
요 근래, 정확히는 거제로의 이사 이야기가 구체화되면서 서너 번쯤, 기어코 전쟁이 터졌다.
오래 묵힌 만큼 서로를 초토화시키고서야 끝이 난 대전이었다.
각자의 힘들다는 표현은 둘 사이 어디쯤에 나뒹굴고 있고, 배려 역시 상대의 필요와는 멀찍이 어긋나 있었다.
또 한 번 엄청나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향해 가위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연애 6년, 결혼생활 9년, 결혼 즈음해서 같이 시작한 학원 사업은 10년.
익숙해지기에도, 지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한동안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불편한 현실은 외면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외면하면서 버틸 뿐.
평화가 아니라 방치였던 셈이다.
그런데 거제 이주 계획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확연히 나아질 미래가 보였다.
무채색으로 바래가던 일상에 바닷빛이 한두 방울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이미 설렜고, 남편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현실은 부동산 연락 한번 없는 정체 상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언제까지인지도 모른 채 기다리는 것뿐.
이 완벽한 괴리 상태에서 우리는 도무지 균형 잡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흔들리고, 부딪히고, 폭발하는 중이다.
.. 이만하면 그럭저럭 말이 되는 분석이지 않은가.
분석을 마친 합리화의 달인은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1. 어두침침하게 멈춰있던 생활에 빛을 향한 힘이 가해졌다.
2. 지금은 희망의 크기만큼 정지 마찰력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3.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운동 마찰력은 폭주를 막아줄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리라.
우선은 이걸로 이 난리통을 버텨나가 본다.
여기까지 와보니 부부싸움을 피할 수가 없겠다.
'마찰'은 필연적이고, 우리는 왜 싸우는 건지 알아도 안 싸울 수가 없다.
우리 둘 중엔 현자가 없으므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것보단 차라리 시간은 잘 갈 수도 있겠다.
우리는 연애할 때부터 한결같이 화해가 빠르다.
전투력은 들쭉날쭉하지만 회복력은 안정적이라는 뜻.
그거면 된 것 같으니, 오늘도 일단은 가위를 얌전히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