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지없이 빨래 지옥 기간이 닥쳤다.
일주일 째 영하 12도를 내리찍는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배수관이 얼어서 빨래를 하면 저층 세대는 물바다가 된다고,
아파트 방송이 하루에 세번씩 울려퍼진다.
처음 이삼일까진 좋았다.
빨래를 안해도 되는 명분이라니, 게으른 주부는 속으로 '오예!'를 외쳤다.
그런데 일주일은 좀 곤란하다.
급한 속옷 같은건 손빨래를 해야할 위험이 생긴다.
아....
게으른 주부 인생 최대 위기다.
빨래가 이렇게 되니 거제에 갔을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부동산 사장님과 아파트를 돌아보던 중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저층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겨울철 동파나 역류의 위험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거제는 인천보다 많이 남쪽이니까, 혹시 괜찮으려나 싶어서 사장님에게 물었다.
"동파요? 동파? 얼어요? 아파트가요?"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반응이었다.
옆 동네 아파트를 둘러보느라 다른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을 땐 오히려 우리가 신기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아까 애기 엄마가 동파 물어보드라. 동파."
"동파요? 집이? 왜?"
하하.
남쪽 나라다.
거제에 있는 동안 만난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거제는 눈이 하도 안와서 '제설'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그래서 십수년 만에 한번씩 눈이 오면 도시 전체가 멈춰버린다고.
살아갈 생각을 하며 둘러본 거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인천과 달랐다.
제주 여행에서나 봤던 것 같은 거제의 낯선 가로수를 보며 생각했다.
한반도가 이렇게나 큰 땅이었던가.
나는 친가가 경상도라서 사투리가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경상도와 한 코의 연결고리도 없이 살아온 남편은 네이티브 대화 앞에서 넋이 나간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들렀던 통영의 한 카페에서 혼이 빠져있던 남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아들은 거제에 다녀오더니 진지하게 묻는다.
이사가면 우리도 사투리 써야 되는 거냐고.
나도 나지만, 두 부자의 사투리 적응기가 볼만 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인천에서 거제로의 이사는 확실히 삶의 터전이 바뀌는 느낌이다.
기온, 말, 풍경.
모든게 다른 그 곳이 많이 낯설 것 같아서 걱정도 된다.
새롭고 싶어 선택한 곳으로는 딱인셈이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거제에서는 인천을 '윗지방'이라고 부른다.
윗지방에서 남쪽 끝으로의 옮김은 지루할 틈이 없을 예정이다.
오늘은 밀린 빨래 더미 앞에 서서,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의 공기를 상상해본다.
...일단 오늘은 이 빨래부터 잘 살아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