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문과 탈을 쓴 이과 Vs 이과 옷을 입은 문과

by ONDI

쭈구리의 기세가 먹혔다.

재신청 결과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다.

새로 발견한 문을 열어 볼 열쇠가 쥐어진 기분이다.




내 주변엔 나만 아는 '쓰기'의 흔적들이 꽤 많다.

늘 뭔가 쓰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 것 같았다.

부끄럽다기보단, 쑥스러웠달까.


고등학교 때 너는 문과다, 확신하는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듣고 이과를 선택했다.

전공은 자연과학, 현재 직업은 수학 강사.

전형적인 이과인의 삶을 살고 있다.


엄마는 늘 말했다.

부모는 자식에 관해서 반쯤 무당이 된다고.

이제 와서 말이지만 솔직히 나, 문과로 살았어도 괜찮았을 것도 같다.

정작 나는 알아채지 못했던 내 정체성의 한 조각을 엄마가 먼저 감지했던 걸지도.


후회는 아니다.

난 과학을 좋아한다.

과학 다음으로 수학도 좋아한다.


다만, 이과적으로 딱딱 끝맺어지기만 하는 인간은 확실히 아니다.

감정에 휘둘리고, 지지부진 고민을 붙잡고 있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그것들을 겪어내는 과정에 늘 글이 있었다.


엉킴을 풀어나가기로 결심하면서 글이 좀 더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내 글들을 흩어져 잊힐 끄적임이 아니라 '관찰 기록장'의 한 페이지처럼 대하기 시작했더니 뜻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알 수도 있는 덤블도어의 '펜시브'.

요즘 내 글은 내게 딱 그런 느낌이다.

정리하지 않았던 생각들과 정의되지 않았던 감정들을 눈으로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는 요즘 필터링 없이 생각을 글로 쏟아낸다.

그리고 나면 읽어보고, 깨닫는다.

뭔가 좀 우습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니.


새로운 문을 열어 빼꼼 들여다본 느낌이 나쁘지 않다.

혹시 내가 다음으로 머물 곳이 여기일까, 하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는 것으로 크게 한 발짝을 안으로 들이밀어 본다.

그렇다. 나는 지금 때맞춰 발견한 낯선 자아가 반가워 소심한 폭주 중이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송옥이 말했다.

'문과 탈을 쓴 이과'처럼 살았지만, 사실 난 '이과 옷을 입은 문과'라고.

정통으로 이과의 삶을 살고 있는 인간에게 문과 진단이라니.


어이가 없다.

그리고 확실히 반갑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라고 해주는 것 같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제 와서 내 성향이 이과건 문과건 무슨 상관이랴.

리셋 타이밍에 절묘하게 새로운 가능성이라니, 행운일 따름.


오늘 내 글을 공개했다.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의 호감 표시에 쑥스러움을 조금 내려놔 본다.


내게 반짝이는 표현이나 따뜻한 감성 같은 건 조금 어색하다.

날 것 그대로를 일단 쏟아내고, 보관하기에 최선인 말을 고를 뿐.

그래서 내 글에 말랑한 구석은 드물다.

하지만 내 글은 확실히 나를 닮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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