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를 싫어하는 사장님
태국에 살면서 한국과 확실히 다른 부분은 이전에는 만날 일도 없던 기업(사업)하는 분들과의 만남이다. 원재료를 저렴한 외국에서 사 와서 태국에서 제조한 뒤에 다시 외국으로 수출하는 분들도 있고, 한국산이나 중국산 완제품을 태국에 수입해 와 판매하는 분들도 많다. 많은 한국 사장님들이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고 나는 그것을 눈앞에서 목도하며 한 기업이 성장해 나가는 날들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음에 감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의문을 갖게 됐는데, 잘되는 기업은 어떤 특징이 있고 또 그들은 어떤 태도로 사업을 이어가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태국에서 만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하나씩 기록해 보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생을 살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해 잘 이해하기 위해 재무제표라도 좀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다가 기업 신용평가를 해봤던 K를 찾아갔다.
나를 만난 K가 꺼낸 이야기는 ‘사장님들은 재무제표를 싫어한다 ‘는 것이었다. 의아해서 회사를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재무제표대로 묻고 답하다 보면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외부에서 기업을 관찰하기 좋은 수단은 그 기업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거나 공시된 재무제표를 읽는 것인데 재무제표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들과 진짜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궁금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계를 잘 모르니 기본적인 사항들부터 설명을 요청했다. K는 설명 중간중간에 숫자로 나타날 수 있는 경영상의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고 사업주와 대화의 시작으로 꼭 써야 할 치트키(?)를 알려주었다.
“제조업으로 5년 이상 하셨으면 이미 상위 10프로 시죠!”
그렇다. 제조업으로 5년을 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이미 회사의 성장이 안정기에 들었고 잘 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시작하면 상호 간 아이스브레이킹이 되어 딱딱한 재무제표를 먼저 들이미는 것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다음으로 알려준 몇 가지 질문을 써보면,
“회사를 운영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셨나요? “
나 같아도 태국에서 살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 같다. 흔히들 자신의 우여곡절 인생을 책으로 쓰면 10권은 나올 것이라며 장담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어려웠던 시절을 어떻게 극복해서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 술술 이야기 봇다리가 풀려나오니 잘 들어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은
“재고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이 질문에서는 재고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고 판로가 확실한지를 읽을 수 있다. 재고자산이 얼마정도 되던데 보통 어떻게 판매하는지, 거래는 어떻게 하는지 물으면 심지어 매출액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화재보험 가입금액이나 ‘1인당 평균매출액‘을 물어보면 실매출액 규모를 알수 있다.
그리고 그 기업에 대해 궁금하거든 기사 검색만 하지 말고 최근에 올라온 채용공고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경리가 회사를 박차고 나가 신규 인원을 뽑는다면 믿고 거르라는 신호라는 것이었다. 경영이라고는 자기경영도 잘 안 되는 내가 봐도 회사의 재정상황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다음 달 월급이 안 나올 것 같으면 그만둬버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질문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들일까 싶다가도 덕분에 기업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만 같아서 그저 기쁘고 신기했다. 자, 이제 새로운 눈이 생겼으니 회사를 하나씩 만나보며 어떤 회사인지 탐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