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하는 사장님
Y를 만난 것은 트럼프 1기 막바지쯤이었다.
“바이어”라는 신분으로 세계를 누비는 Y는 기존에 내가 만나왔던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공통점을 찾아낼 수 없는 캐릭터이었다(나는 한 회사에서 월급쟁이로만 살았으니 인간관계가 폭넓기는 어렵다).
Y는 사업하는 사람 특유의 긍정적인 면모와 그의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Y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사업을 향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다 보니 어느덧 무역에 대해 궁금해지게 됐다. 이때가 이미 4-5년 전이니,
‘무역, 이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태국까지 오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Y는 지금의 트럼프를 예견이라도 한 듯 보호무역주의로 변해갈 시장을 예측하며, 관세의 향방이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언제든 통상의 틈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곳을 생산기지로 미리 섭외해 나갔다. 가령 중국에 국한해서 생산하던 것을 한국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를 리서치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세안 어느 지역으로 옮겨갈 것을 검토했다. 이미 그의 주문으로 아세안 여러 곳에서 물건들이 생산되어 미국, 유럽, 남미 등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가고 있기도 했다.
이성적인(?) 미국인들의 투표결과에 따라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그간 Y의 예상은 빗나갔고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프로젝트들은 동력을 잃는 듯 보였다(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던 트럼프가 돌아왔고, 트럼프 정부는 ‘세계 최대 시장(팔 곳)‘이 미국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수많은 국가와 체결해 두었던 통상협정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고관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관세 대혼란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좋은 기회로 Y를 다시 만나게 됐다. 내가 태국에 온 이후 시장분석은 물론 여러 가지 문제에 늘 고민의 연속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Y를 다시 태국에서 만나다니 꿈같은 일이었다.
그간의 소외를 전하고 Y는 나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운동할 때 음악을 듣지 않고 달리기‘를 시도해 보라는 것이었다. Y는 오랫동안 마라톤을 해왔다. 전 세계 유명 마라톤에 참가하며(심지어 남극까지) 자신만의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데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나는 음악 없이 달리는 것은 팥소 없는 찹쌀떡 같은 것이라 좀처럼 당황한 기색이 아닐 수 없었다.
‘음악이 없는 달리기’는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화‘를 다스리고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됐다는 의미와 ‘달리며 달라진 자신‘이 사업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뜻밖의 조언에 달리며 달라질 내가 궁금해졌다.
아쉽게도 Y의 다음 선약 시간이 다가와 다음을 기약하며 조우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미국에서 그를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 과연 나는 음악 없는 달리기에 익숙해지고 지금과는 달리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Y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