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l 08. 2024

여행에 대한 것(만)은 아닌

천 장의 사진을 대신할 하나의 문장?


"이 독창적인 소설은 대체 불가한 가족 앨범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품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문장 하나가 사진 천 장을 대신한다." - 필립 로스



# 사진 천 장을 대신할 문장 하나라니. 무려 필립 로스가 한 말이다.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잠 못 드는 밤>에 대한 언급. 우연일까. 나는 마침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7천 장이 넘는 사진을 어떻게든 정리해보려는 참이다. 그런가? 사진 정리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정리라니.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정리한다는 말인가. 이 말은 중요하다. ‘기억’과 ‘글쓰기’라는 키워드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 기억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기억’을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리’한다는 것. 정리라고? 반복한다.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정리한다는 말인가. 시간? 사건? 이미지? 특정 대상? 단어? 혹은 개념? 글이라는 매체 이전에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모종의 선(先)작업을 시작해보려는 마음이랄까. 선작업이란 이렇다. 사진을 통해 지난 시간을 복기하고, 솎아내고, 선별하는 것.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 찰나의 감정 혹은 (운이 좋다면) 그때 불현듯 솟아오른 어떤 단어나 문장을 되살리는 것.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억을 불러내고 선별해 (어떻게든) 한 문장 이상으로 이어지도록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이를테면 글쓰기를 위한 준비 작업. 이미지가 불러내는 어떤 시간, 시간 속 이미지들의 연쇄가 불러오는 ‘어떤 말들’의 자의적 조합과 배치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보는 것.


# <잠 못 드는 밤>의 첫 문장. “지금은 6월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문장 - “당분간 무엇을 하며 살지 정했다” 그리고 “기억을 과제로 삼아 이 삶을 계속 살아갈 생각이다”로 요악되는 문장 - 때문에. 나와 이 텍스트의 연결고리를 좀 더 이어보기로 한다. 화자(이자 저자)가 당분간 무엇을 할지 정한 것처럼. 그렇게 결정한다.


# 지금은 7월이다. 6월의 대부분을 나는 부다페스트, 빈, 잘츠부르크,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베를린, 브뤼셀,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보냈다.


# 사진 천 장을 대신할 수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다면. 이런 식이라면. 7천여 장의 사진을 7개의 문장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 그럴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오늘도 사진 정리를 하며(하루에 한 도시에서의 1일을 목표로), 잊지 않았으면 하는, 혹은 글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떤 것, 어떤 느낌, 어떤 이미지 주위를 하릴없이 서성이는 수밖에.


# 게다가. 선형적 시간으로 구성하지 않는 것. 1954년. 1962년. 그러다 다시 1940년. 서간체였다가, 일기체였다가, 회고체였다가. 단상과 파편적 사유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픽션인 듯 픽션 아닌 듯. 시적 문장과 인용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힌트는 뜬금없이, 난데없이,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다가온다. 시-언어와 산문-언어의 융합. 어쩌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새삼스러운 각성.


# 여행 중에도 나는 항암 중인 L과 짧게나마 대화를 주고받았다. 시차 때문에 어긋나는 대화는 편지의 형식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 사진을 곁들인 엽서의 형식이랄까. 잘츠부르크에서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브뤼셀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는 C에게 메일을 쓰기도 했다. 문득 써야겠다는 마음. 몇 자라도 적어야겠다는 혹은 어떤 대상을 향해 일어난 마음을 글로 옮겨야겠다는 마음. 그 ‘어떤 대상’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며, 끝없이 변화한다.


# 불현듯 일어나는 발심(發心). 그 발심을 유지하는 것.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속하는 것. 지속하려 노력하는 것. 의도적인 자극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노출의 효과와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 게다가. 잠 못 드는 밤이어서. 시차 적응 때문에 일주일째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고 있어서. 이런 우연.


# 저자가 말한 두려움의 대목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말한 어떤 작품을 떠올린다. 그 두려움은 공포로 혹은 광기로 번역되기도 한다.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또는 이에 대한 오마주로 시각화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어쩌면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피츠카랄도>와 연결될지도 모른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아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것은 연결된다.


# 파편적으로 읽다가 내린 결론. 그래, 꼭 여행기일 필요는 없다. 아니 여행기여서는 안 되지. 그런 식의 이름 붙이기는 거부하기로 하지 않았나. 다시 결론. 여행에 대한 것만은 아닌. 그러니까. 이 문구는 어째서인지 계속 반복해서 쓰게 되는 패턴이다. 무엇무엇에 대한 것만은 아닌. 누군가의 글을 계기로 (제목이었는지, 그 글의 일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찾아보면 금세 알게 되겠지만. 찾아보지 않기로 한다.)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확신하게 된다. 내가 쓰는 글들은 다 이런 식이구나. 꼭 무엇무엇에 대한 글만은 아닌 글. 이런 글을 쓸 때 나는 편안하고 즐겁구나. 목적과 정교한 구성 없이, 헤매는 대로 구성되는 글. 구성 없는 구성. 비구성적 구성이 하나의 구성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는 글(물론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말). 퇴고도 없이. 퇴고에 대한 고민도 없이.


# 출판사 소개글 중. 저자는 "1979년 세 번째 장편 《잠 못 드는 밤 Sleepless Nights》을 발표했다. 사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에서 일인칭시점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장르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엎는 독보적인 형식 그리고 시를 연상시키는 함축적인 문장으로 평론계와 독자들을 매혹했다."


# 1979년이라니. 이미 45년 전에. <지옥의 묵시록> 또한 79년 작품.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암흑의 핵심>을 다시 읽어본다. 아니 펼쳐본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아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것은 연결된다.


# 이미 밑줄 그어져 있는 문장들. 나는 무엇을 읽었던가. 10년 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해 이번에 두 번째 방문하고서도 끝까지 기억하지 못한 사태. 기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아니 알기에) 후에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남겨놓는 일. 흔적을 남기는 것은. 덧없지만 덧없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게 다 그렇다. 다 그런 것은 아니어도 대체로.


# 덧없는 것을 알지만 덧없는 것에 마음을 거는 이유.


# 천 장의 사진을 대신할 하나의 문장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사진 하나에서 힌트를 얻어 하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면. 힌트를 얻는 것은 모종의 능력. 나는 힌트 능력자로서의 거듭남을 원하는 것인지도.


(2024-7-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