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내려놓는 맘이 시작하게 한다
내가 그림을 다시 그려보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잘하는 게 뭘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이러니하게 브랜드와 디자인, 기획, 교육 등
많은 일을 해왔는지만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여전히 생각하곤 한다.
(여기서 잘하는 것은.. 회사일이 아닌 것 같다)
일에 대한 전문성을 글로 써보라는 권유에
글이라는 게 어렵다는
내 맘의 허들,
그러니깐 두려움이 나를 붙들었고
입시준비로 했던 그림이 생각났다.
그렇게 오래 그렸어도..
'그런데 정말 이건 잘할 수 있니?' 하는 맘으로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다.
첫 그림은 딸을 잘 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렸다.
이쁘게 그리고 싶은 맘으로 그려갈수록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결정적 선'을 만들려는 욕심이 그림을 못 그리게 했다.
선을 하나하나 그리는 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려니
그럴수록 더 부자연스러워지는 선...
뭔가 잘해야만 하는.. 압박감..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 된다..
'모든 시간이 결정적 선을 그리진 않아. 꾸준히 그려봐...
그냥 그 자체로 의미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과 욕심을 내려놓으니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다른 일도 그럴까?
조급한 맘을 툭 내려놓고
그냥 하는 거... 삶의 순간이 모두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글도 그럴 것 같다.
잘하고자 하는 맘을 내려놓고 묵묵히 해보면,
이전의 그림을 했던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때를 만나듯,
다른 것에도 해당하는 말이겠지...
무언가를 처음, 혹은 다시 시작하는 순간의 떨림.
그 시작으로 기회가 열리는 것 같다.
멀리했던 그림을 긁적이면서 드는 기쁨,
그 시작이었다.
“세상의 유일한 기쁨은 시작하는 것이다.
-체사레 파베세”
The only joy in the world is to begin.
- Cesare Pavese
이 순간의 이름은 시작(Star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