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일기 검사 안 하게 해주세요!

by 손사쁨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욕을 잘했다. 무슨놈 무슨놈, 무슨년 무슨년.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리가 없는데 그 보다는 성별 맞춤형 욕으로 아이들을 지칭한 기억뿐이다. 남녀에 대한 구분을 철저히 하신 것도 일종의 교육이자 배려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숙제를 꽤 많이 내주셨는데 그 중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국어 숙제였다. 새로운 단원에 들어가면 단어 10개를 골라 비슷한 말을 정리하고, 또 10개를 골라 반댓말을 적고, 마지막으로 10개를 골라 짧은 글짓기까지 이 숙제를 반드시 해야만 했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말장난 하듯 갯수 채우기 식의 숙제를 제출하면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다. 교탁을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선생님께 쫓겨 다니며 회초리로 아무데나 맞아야 했고(매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수도 있다), 선생님이 내 뱉는 욕사발에도 맞아야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는 알 길이 없다.


두 번째 숙제는 일기였다. 매일 써야 했고, 선생님은 매일 읽으셨다. 보통 검이라는 글자를 동그라미로 감싸는 것이 확인했다는 표시였는데 이따금 짧은 문장을 남겨주시기도 했다. 그런 날은 '내가 일기를 잘썼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칭찬은 간헐적으로. 그해 일기장만 예닐곱권이 나왔던 것 같다. 이사를 하면서 누군가 그 귀한 걸 싸그리 버려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공책을 쌓아 올려 한 손으로 집으면 엄지와 검지 사이에 꽉 찰만큼 많았다.


일기를 쓰지 못한 날이 있었다. 단칸방에 엄마, 언니와 살던 시절인데 오늘은 쓸 게 없다고 저녁 내 징징거렸다. 눈물도 났는데 열시가 넘으니 엄마가 불을 껐다. 스탠드도 없었다. 어두운 방에서 '어떡해, 어떡해' 끙끙 앓으며 울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스르륵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심정이 가늠이 되실지 모르겠다. 정말 무서웠다. 초등학교 2학년, 학교도 일찍 들어가 고작 여덟 살이었다. 아홉 살이라고 한들 뭐가 달랐을까 싶지만.


죽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학교에 안 갈수도 있다는 걸 모르던 시절이라 뻔히 그려지는 나의 운명을 알면서도 본의 아니게 용기 있게 학교엘 갔다. 육교 하나를 건너야 했는데 공포가 더해진 절망감을 안고 바닥만 바라본 채 한 칸 한 칸 간신히 오르던 그 계단, 그 순간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때 떨구어진 고개가 지금 이 거북목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육교에 다 올라서는 괜히 갈지자로 걸었다. 이쪽 난간에 붙었다가 다시 저쪽 난간으로 산송장이 되어 터덜터덜 걷던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를 했는지, 얼마나 애타게 하나님을 찾았는지 모른다.

"하나님,

오늘 일기 검사 안 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백 번도 더.

천 번도 족히.

그리고 그날,

선생님은 일기를 검사하지 않았다.


나의 첫 번째 응답받은 기도였다. 어린이 우대? 작고 어린것이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아님, 하나님의 자녀가 욕지거리에 매질을 당하는 것이 싫으셔서? 이유는 몰라도 그날 안개 자욱한 깊은 숲속 보일듯 말듯한 존재였던 하나님이 진짜 계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그날이었을거다.

그게 시작이었을거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