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들리는 말

나만 아는 스탑챌린지

by 손사쁨

쓰기 싫은데 쓰고 싶어서 일단 눌러본다. '글쓰기'


주제가 있는 글, 각 잡고 쓰는 그런 글은 쓰기 싫은데 천재 작곡가가 구겨진 종이 어느 한 귀퉁이에 음표를 마구잡이로 그려넣듯 천재는 아니지만 진짜 작가도 아니지만, 출판사 근처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오늘은 그냥 막, 휘뚜루마뚜루 맛따라 길따라 식의 미학적 접근을 한 번 해볼까 한다.


한 동안 절필을 했다. 지가 뭐라고. 정확히는 절키였고, 브런치는 아예 들어와보지도 않았다. 몰래 몰래 문서 프로그램에 기깔나는 글 들을? 그럴리가. 정말이지 악착같이 끊고 지냈다. 한 번씩 글로 남기고 싶은 날에는 머릿 속에 문장이 뭉텅이로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예를 들면 우리 하이와 끝말잇기 하던 날. '새우' 하길래 '우산'으로 받아쳤더니 새우가 아니라 새후라고, 세상 당당하게 후로 시작하는 단어로 다시 하라며 바득바득 우김을 당하던 그런 날, 무식하면 이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와 닿았던 그런 날은 정말 쓰고 싶었다. 최근 여름 휴가지 그림같이 예쁜 카페에서 아기자기한 소품 사이사이로 얽힌 거미줄에 도파민이 터지고 영감이 샘솟는데, 하 쓰고 싶어 죽는 줄.




자기계발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이게 맞나 하는. 삼남매를 키우는 엄마인데 오늘 해야 했던(하루에 계획된 to do list) 글쓰기와 독서를 못했다고 오늘은 망했다는 내용의 한 피드가 시작이었다. 왜 망했지? 삼남매인데? 독서, 글쓰기 아니어도 하룻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을지가 보이는데 망했다는 글에 뇌가 멈추는 것 같았다. 내 일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데 글을 안 쓰고 책을 안 읽어서 하루가 통째로 꽝이 되어버리는, 따지고 보면 허무맹랑한 이 이야기가 꽤 그럴싸하게 보이는 바야흐로 자기계발의 시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더 중요한 일들을 하셨잖아요.'가 아니라 '저도 오늘 목표로 한 것들을 하지 못했어요.'라며 내일부터 다시 힘내 보자고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댓글이 달리는 모습이 너무도 기이한데 문제는 나도 그런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래서 멈춰보기로 했다. 이름하야 스탑챌린지, 참여자는 나 혼자. 공식 명칭은 '나만 아는 스탑챌린지'지만, 이 또한 나만 알고 나만 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라는 책처럼 멈추면 뭔가 보이겠다는 확신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란함에 어지러울 정도였고,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는 있는데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T-map 없이 운전하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멈췄다.


'뭐지?'

'이게 뭐지?'

'도대체 뭐지?'

'뭔가 이상하잖아.'


연거푸 이어지는 물음표를 안고 그렇게 2025년을 시작했다.




연초부터 굵직한 일들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떤 학교로 발령이 날 지 기다리는 중이었고, 봄이 되면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어 임대든 매매든 반드시 계약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하반기에는 아이의 초등학교 지원까지, 내 의지나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왜 그랬는지, 이런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뭐랄까. 보다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영역을 점검하고 싶었다고 해야하나. 내 필요를 내려놓고 나아가고 싶었다.


"40일 작정기도 해볼래?"


말로는 들어봤지만 해 본 적은 없었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검색을 하던 중 40일짜리 묵상 도서를 발견했다. 1월 중순이 지난 어느날부터 시작한 40일 묵상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뭐 더 하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열 글자도 안되는 짧은 말 '뭐 더하려고 하지 마라'. 까불지 말고 네 할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차가운 음성이 아니었다. 이유가 있었다. 이미 충분해서,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고 안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여러 번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닌데. 나 부족한데.'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미 충분하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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