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자요 여보, 사랑해요."
"응. 나두."
우리 부부의 수면 의식이다. 그 끝은 쪽하고 입을 맞추는 것이지만 오늘은 없다. 뽀뽀가 없으면 사랑이 아니지. 가짜 인사, 말로만 하는 사랑이다. 남편의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면서 저렇게 감쪽 같이 아닌 척을 하고 사랑한다 말한다. 나의 대답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기본은 '응수'이다. 하루 이틀 해 본 장사가 아니다.
'당신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한다면, 좋아 받아줄게.'
남편은 전형적으로 이중메시지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를 미묘하게 불일치 시키는 의사소통 전문가. 친절한 말투로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냉랭함과 불편감을 또렷이 전달하는 이중메시지 전문가. 엄마들이 말 끝을 죽죽 늘려 "자알 한다." 이 말이 이중메시지의 가장 흔한 예인데 그래도 이 표현은 '너의 하는 꼬락서니까 참 마뜩잖다'는 본래의 의미가 명확히 전달된다. 하지만 내 남편의 이중메시지는 정말이지 교묘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기 기분 안 좋아?"라고 묻곤 했다. 남편의 기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이상야릇한 기분이 잘못된 게 맞지?' 라고 묻는 것인데 '그렇다' 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가슴 속에서 번개가 치고, 벼락을 맞은 것처럼 뭔가가 쿵 주저앉았다.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무안함 등등 다양한 나쁜 것들의 진액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듣기 싫은 Yes가 있을까. 예상이 안되는 남편의 드러내지 않는 불쾌감, 하지만 끄집어 내야 끝나는 이 문제 때문에 한 동안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결혼 초, 정확히는 하이가 태어나고 돌 쯤부터 그의 꼬인 표현이 폭주하기 시작했는데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처럼 낌새가 느껴질 때마다 바보같이 물었다. 왜. 이번엔 아닐 줄 알고. 멍청하기도 하지. '맞다'는 그 말을 들으면 돌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서야 나도 조절하기 시작했다.
묻지 않고 묻어버리기.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방식으로는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엄마적 마인드 훈육적 스탠스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고, 단순 회피였다. 확인하고 또 무너지느니 모르는체 하는 것이 나았다. 불안정애착, 예민한 집착형 여자가 꺼림찍한 감정을 포착하고도 그냥 넘어간다? 참새 방앗간 지나가기 보다, 핸드폰 열고 카톡 안 보기 보다 더 어려운 일, 내가 그걸 했다.
그의 본심은 '내 마음을 알아줘'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기에 내 꼴이 너무 우스웠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남편을 향해 웃고 조잘거리며 온갖 깨방정을 떨어댄 내 꼬락서니 말이다. 그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구경꾼은 없지만 구경거리에 놀림감이 된 것 같았다. '농락'이 이런건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화에 화를 내고, 남편의 화에 또 화를 내는 금쪽이가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 장사도 7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이제는 나도 여유를 좀 부린다. 남편의 이중메시지는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그 불편한 소통법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는다. 그저 생각한다.
'지금 내가 수용할 수 있나?'
지금 수용할 수 있으면 아는체 해준다. 지금 수용하기 싫으면 '아는체 보류'다. 오늘 처럼 말이다. 나도 똑같이 천역덕스럽게 "사랑해"라고 해주는 것. 알면서 뭉개줄 때 느껴지는 은은한 쾌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수용해 주고 싶지도 않고, 나 또한 너 못지 않게 기분이 나쁘다? 그럼 나도 나의 미숙이를 꺼내 입을 닫아 버린다. 수용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든, 침묵으로 태세를 전환했든 서로에게 틈이 주어진다. 그 일시적 거리두기의 시간이 발휘하는 힘이 있다.
"어제 자기도 기분 나빴지?"
"응"
"미안해."
"나는 자기의 포인트를 잘 모르겠어. 보통 사람이 기분이 상하면 주된 이유가 있잖아. 자기의 주된 이유는 뭐야? 난 지금도 그게 잘 파악이 안돼. 그래서 힘들어."
차분하고 건설적인 대화. 서로의 감정에 대해, 그 상황에 대해 칼날 없이, 가시 없이 담담하게 진지하게 정 있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내 질문에 남편은 잠깐 생각에 잠겼고, 본인이 기분이 상했던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내 뚜껑만 날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상호 이해라는 교과서적 목적을 달성하는 대화를 제법 잘 나눈다. 우리의 잔잔한 싸움은 이렇게 진행되고 이렇게 마무리 되곤 한다.
우리 비록 미숙이지만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중이다. 변미숙이는 손미숙의 언어를, 손미숙은 변미숙이의 방식을.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내년도 내후년도, 10년 20년 오래오래 죽을 때까지 싸울 예정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숟가락 하나 쥘 힘 겨우 남아 있다해도. 네가 뭘 해도 타격감 하나 없이 귀여웁다 생각하며 허허 웃는 그날까지. 진정한 싸움왕이 될 때까지. 맹렬히. 폐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