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받는 순간 다들 피식했다. '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되던 나의 그날, 서른일곱 12월 30일.
우리는 한 학교에 근무 중이었고, 학기 중에 부부로 변신하자니 부담이 컸다. 신혼여행 가겠다고 담임교사 둘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기도 죄송스러웠지만 아이들이 들썩거릴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종업식 다음날. 그게 이유의 전부였다. 같이 살 집도 없으면서 같이 살기로 했다. 되게 사랑했나 보다.
식을 올리고 두 밤을 자니 해가 바뀌었다. 이틀 만에 결혼 2년 차가 되었고 내 나이 서른여덟. 당장 애를 낳으러 가도 노산. 다행히 출산에 대한 의견이 일치했다. 남편은 아기만 보면 살살 녹는 사람이었고, 나는 둘로 만족하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서른 중반이 넘어 결혼한 친구가 난임 병원을 추천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바로 가라고 했다. 자연임신이니 뭐니, 시도를 하네 마네, 그러지 말고 그냥 가라고 했다. 무조건이라고 했다.
"야 나도 여기서 생겼고, J도 여기서 생겼어. 내 주변 애들은 다 여기서 생겼어."
다니기만 하면 애가 생긴다니 놀라운 병원이었다. 그 대단한 병원에서 나보고 난임이랬다. 슬프거나 서럽지 않았다. 막막하거나 두렵지도 않았다. 그냥 '아니 왜 내가 난임이야?' 하면서 승질이 나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눈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은 계속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의 막힌 나팔관도 뚫을 수 있다는 건가. 그렇게 쎈 놈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까. 그걸 어떻게 확신할까. 그의 자신감은 끝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당장 시험관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인공수정으로 유의미한 가능성을 기대할만한 상황이 아니랬다. 권유가 아니었다. 머스트비 해브투,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바라봤고 남편도 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선 미소를 띤 채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차분하게 설명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격앙되셨다. 자세를 고쳐 앉았고, 친절하려고 노력은 하셨지만 어조가 강경해졌다. 그분의 눈빛과 표정, 얼굴이 전하는 메시지가 훨씬 쉬웠다.
생각?
무슨 생각?
생각을 왜 해?
임신이 안된다니까?
나이 많지.
나팔관 막혔지.
호르몬 안 나오지.
왜 못 알아듣지?
좋게 말해서 그런가?
안 돼요
임신 안 돼요
안된다니까요
무.족.권. 다녀야 했던 병원을 돌아 나와 3개월, 딱 3개월 만에 하이를 만났다. 입덧과 어지러움으로 급하게 야간진료를 받았다. 그게 첫 진료였고, 그날 하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아주 튼튼하네요!"
물론 기도했고 당연히 기도했다. 내 삶에 기도 없이 이루어진 일은 없으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모든 기관을 만들고 그 기관에 기능을 주셨잖아요.
저도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 몸이 본래의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여자만 할 수 있는 그 일을
저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약하디 약한 나는 튼튼한 심장을 품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하이. 뱃속에서도 위아래를 분별해 바르게 자리 잡은 애를 두고 왜 역아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덕에 출산에 대한 선택권도 없었다. 수술 날짜를 잡아뒀지만 하이는 서둘러 나왔다. 세상에 그렇게 예쁜 핑크가 있을까. 작은 핑크색 방울 하나를 보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는데 일단 오라고 했다. 왜 그랬는지 나는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고, 남편은 가방을 쌌다. 그게 출산 전 마지막 목욕이었으며 그 가방이 출산 가방이 되었다. 인간의 무의식은 참 놀랍다.
임신과 출산 모든 과정에 '내가'는 없었다. 주체적으로 주장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여지 내지는 모든 싹이 제거된 상태랄까. 시기를 논할 수도, 방식을 택할 수도 없었다. 계획은 무용지물이요 주셔서 받았고 나오겠대서 꺼냈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하이다.
“오느은 어이니집 끈나때 엄마가 와.”(오늘은 어린이집 끝날 때 엄마가 와)
13일의 공백이 너무 길었던 걸까. 남편의 정확하고도 방대한 깨달음에 당황했던 걸까. 마음은 맑음인데 여전히 입을 앙 다물고 있었다. 습관하나 만드는데 최소 3주가 걸린다는데 2주만에 침묵이 내면화된 건지 체화된 건지. 애잔한 편지를 받은 그날도 카페에 갔고 집에 와선 남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아들이 나를 콕 찍어 하원을 시키라 한다. 아들의 요구는 거부할 수 없다. 오늘은 자유부인도 카페도 포기다. 시간을 최대한 늦춰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
남편이 서있다. 조용한 주차장, 두툼한 패딩을 입고 표정없이 서있는 남편의 모습이 왠지 슬펐다. 눈물이 왈칵 솟았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남편이 “같이 가.” 한다. 오랜만에 듣는다. 나긋하고 다정한 남편 목소리.
적막하다. 싸늘하진 않았다. 마음이 풀렸다는 걸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왜 그렇게 고민이 됐나 모르겠다. 머리가 또 복잡해져서 멈추기로 하고 그냥 손을 잡았다. 남편이 놀란 듯 움찔했다. 때리는 줄 알았나. 침묵이 조금 더 이어졌다.
꼼지락거리더니 자기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나에게 끼워준다. 아 맞다. 결혼반지. 승질 나서 화장대에 던져 놨는데 남편이 두 개를 끼고 지내다 제 자리를 찾아준다. 정말이지, 난 참 가지가지 한다.
나는 "내일 소파 와."라고 했고 남편은 새로운 수업을 신청해서 듣는 중이라고 했다. 맥락 없는 근황 토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게 부부인가. 남편이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손깍지를 한 채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한다. 말에 말이 더해진다. 하이 앞에서 다시 웃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셋이 같이 놀 수 있다.
모두 아이 덕분이다. 자모실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덕에 두 사람이 함께 '연합'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마치 그런 말씀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마치 말씀 잘 들으라는 듯 그 시간을 얌전히 보냈다. 주차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남편을 본 순간, 나보고 저를 데리러 오라는 지시는 마치 '이래도 화해 안 할 거야' 하며 날린 와일드 카드 같았다. 하이가 평소처럼 했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하이가 없었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도대체 얘는 뭘까.
편지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래요. 이 공동체는 하나님이 하나하나 고민하시면서 '진이(남편) 옆에는 누가 있어야 좋을까. 그렇지 사쁨이가 함께 있으면 좋겠어. 거기에 하이가 태어나며 완벽한 공동체가 되겠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고민하시면서 만들어 주신 선물이래요.
왜 나에게 그렇게 쉽게 하이를 보내주셨을까. 이제 알 것 같다. 우리 둘로는 안되어서, 안 되겠어서, 우리 둘만으로는 모자라고 부족해서 말이다.
하이야, 잘 들어.
곧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될 거야.
그런데 엄마, 아빠에게 아주 약하고 여린 부분이 있어.
그러니 하이 네가 가서 둘을 잘 연합하도록 도우렴.
작은 너를 내가 사용하마.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이 귀한 아이를 다시 본다. 나의 부족함, 우리가 부족하다는 그 증거인 하이를 존중과 겸손의 마음으로 본다. 내 사랑하는 아가, 53개월짜리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지령을 받고 급하게 파견된 특공대. 그게 우리 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