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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09. 2023
브런치에 답하다
왜 쓰는가.
자꾸 묻는다. 누가 보면 글로 돈 깨나 만지는 줄 알 지경이다. 내 글을 보는 이라곤 남편 하나 뿐인데 뭣 좀 쓸라치면 끊임 없이 물어오니 곤혹스럽다. 도대체 왜 쓰는가. 굳이 왜 쓰려고 하는가. 망설임을 이끌어 내는 질문이 참 고약하다.
활자로 나를 공유하는 전체공개의 삶을 살았다. 프리챌, 싸이월드부터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커뮤니티 플랫폼의 트랜드에 맞추어 사적인 영역의 바닥마저 아무렇지 않게 나누었다. 안물안궁에 악착같이 TMI로 답하는 물색없는 애. 되짚어보니 관종이다. 내 이야기를 이 세상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관종. 이 고상하고 품위 있는 글쓰기의 원동력, 관종적 본능 때문이었을까. 그랬다면 I am 실망. 씀의 이유가 볼 품 없다.
정말 기이한 것은 쓰는 생활이 꾸준했음에도 그것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취미라는 주제가 주어진 날, 취미가 없다는 내용으로 취미에 대한 글을 쓰다 취미를 찾아버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신비한 이야기 와이 같았던 날.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다고 여겼던 그거, 그게 나도 있다니.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자각과 취미 있는 사람으로의 거듭남. 씀의 유익이었다.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배를 찾은 기쁨과 비슷했다. 유선을 따라 젖이 돌듯 박하사탕 같은 개운한 즐거움이 양 가슴에 차올랐다. 즐기려 하는 일이 취미라는데 너무 귀한 나머지 책임감 마저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글쓰기를 수호함으로써 나의 세계를 견고히 다지고 싶은 것이다. 엄마도 선생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내가 나로서, 나니까, 나라서 하는 유일한 것은 이제 이것 뿐. 씀.
선물을 받았다. 글 하나 발행을 안 했는데 브런치가 날 작가라 불러준다. 작가 되려고 작정하고 모인 나의 두 번째 동지들, 그리고 두 번째 글애미 이은경 선생님. 메모장 어플에 파일이 하나 둘 늘어간다. 이름 짓기, 제목 짓기, 제목 하나 따로 떼어내 소재 적기. 주변에 작가됨을 선포하여 축하 받기. 필명 짓느라 온 교무실이 대동단결했다. 품위를 중시하는 교무부장님, 웃기는 한방이 필요하다는 짝궁선생님. 그 와중에 이사를 했고, 온 집이 이사박스로 가득한 날도 난 모임에 참여했다. 어떠냐 내 열정. 아니, 씀을 향한 내 정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