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얼굴이 아닌걸 보니 1학년 학생인가 보다. 2학기가 끝나가는 계절에 화장실을 못찾아 교무실에 왔을리는 없을텐데 아이의 몸이 배배 꼬인다. 형식적으로 끌어올린 입꼬리에 굳게 닫힌 치아, 연신 머리를 쓸어올리는 모습이 보기에도 불편하다.
"저, 선생님. 이거."
엉덩이로 버티며 등으로 낳은 내 새끼, 나의 세번째 책을 들고 왔다. 정말 엄마는 모르는게 없구나. 내가 아이의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아이에게 책을 들려 보내셨다. 알지도 못하는 선생님을 찾아와 맥락 없는 부탁을 하는 것이 사춘기 남자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알고 있다. 얼굴이 팔리는 숭고한 희생 앞에 아닌 체, 모르는 체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메모를 챙겨두고 급하게 이름 석자와 짤막하게 감사 인사를적었다. 아직 아이라 사탕 하나에 얼굴이 환해진다. 교무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이 쉬어지는 느낌. 수능한파가 열대야로 바뀐 듯 온 몸은 후끈,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얼굴은 분명 발갛다.나에게도 이런 날이. 이름을 잘 지은 덕일까. 사쁨. 오늘, 지금, 이 순간 사쁨하다.
한자 한자 놓치지 않고 메모를 읽어내려간다. 친구에게 내 책을 추천했는데 그이가 나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동료였다고, 자기 이름 방패 삼아 사인이라도 받아보라 해주어 용기를 내셨단다. 씀으로 인해 만들어 지는 인연들.귀하다.
"여기서 우리껀 안방 한칸 정도 되나?"
"안방도 안 되지."
주택도시금융공사의 든든한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덕분에 자가인듯 자가 아닌 자가 같은 집이었다. 한마디로 빚천지였지만 살아보니 빛 잔치.진짜 내 집엔 쓰는 자리가 있었다. 마음에 쏙 드는 '작가석'에 앉아 새벽에 쓰는 삶. 캬. 작가폼 미쳤다.
처음 가져본 집이라 이 집에서의 모든 하루가 특별했다. 이 집에서 처음 똥 싼 날이 생생하다.
'이야 이렇게나 많이. 이 집은 내 집이 확실하구나.' 영역표시랄까. 내가 여기 왔노라 존재를 알리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야생의 범이 된 것만 같았다. 배변활동 조차 소중한 나머지 세 식구 보금자리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이심전심이었을까. 그 연재가이상하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브런치에서 내 이름이 알음알음해졌고,다른 글도 덩달아반짝반짝 빛을 냈다.
그렇게 이 집에서 세 권의 책이 나왔다. 예정된 것만도 두 권. 솜씨 부족한 글이 읽히고, 못난 엄마의 이야기가 팔린다. 올해의 책 후보에 작디작은 나의 이야기가 오르고, 이주윤 작가님, 이은경 선생님과는 부담 없이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쓰고 보면 여전히 쓰레기 같은데 제안과 초대를 받는다. 좋아서 쓴것 뿐인데 많은 것을 누린다. 나의 결핍과 불안, 그리고 나로부터 말미암은 하이의 예민함. 모든 것이 축복이었다.
어느 새 열살이 된 하이와 불쑥불쑥 영어로 후리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 집에 온 덕분이다. 길어진 출퇴근 길을 영어로 채웠다. 배우기 좋은 시대였다. 1년을 반복하니 막귀에서 정상귀로, 유창하지는 않지만 세상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발화가 됐다.하이 말고, 나. 마흔셋에 입이 트였다. 고가의 사교육은 엄두도 낼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유튜브의 지원에 발화가 된 엄마의 수고가 더해지니 영유 부럽지 않았다.
정확히 5년 전 오늘이었다. 새벽 6시 떠나는 예배를 드렸고, 이 집에 들어와 열흘쯤 되던 날 첫 예배를 드렸다. 그 때 나누었던 말씀도 정확히 기억한다. 글자로 기록된 그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진 이야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매일 품고 숨쉬듯 외웠다. 눈물로 뿌린 씨는 아니었다. 감사로 뿌렸는데 기쁨으로 맺힌다. 그래. 이름값이야. 사쁨.
이제 안방도 거실도 화장실 두 칸에 주방까지 우리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건강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여전히 예배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각자 할 것을 들고 거실 테이블에 모여앉는다. 배경음악도 빠질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뜨겁게 사랑하는 두 남자를 곁에 둘러놓은 후 비로소 나의 세상으로 몰입하는 아이러니한 시간. 오늘 저녁 해야 할 일 두 시간만 미뤄두고 5년 후 어느날을 다시 그려봐야겠다. 어차피 결론은 뻔할테지만.Thanks and Joy. what e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