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온 부모들을 보며 속으로 훈수질을 참 많이도 했다. 오박사 님이 이미 다 처방해 주었건만, 방송용 완곡한 표현이 성에 차지 않아 더 직설적으로, 한껏 날을 세워서 오목조목 부모의 잘못과 그로 인해 아이가 받는 영향을 알려주는데 나도 동참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댓글창을 막아놓았겠지. 내가 뭐라고. 아들 꼬추 잡게 만든 장본인이 나 아니었던가. 하나 밖에 안 되는 자식 키우며 절절매는 주제에 그저, 단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이유로 선을 넘나들었다.
네 살 난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가 나왔다. 아이에게 10시간 넘도록 유튜브를 틀어줬다. 부모는 골아떨어진 밤, 아이 혼자 영상을 본다. 휴대전화도 티브이도 켜져 있다. 아이들은 이것을 보다 저쪽을 보다 시선이 이리저리 오간다. 엄마가 조금 버텨보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가 이긴다. 아이들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징징거렸고 광광 울어댔다. 끝까지. 악착스럽게. 그렇게 원하는 것을 번번이 얻어낸 아이들은 물러설 줄 몰랐다. 아니 물러서는 법을, 엄마의 말을 따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4년 정도 관찰해 보니, 아이들은 탁월한 전략가이다. 아이는 구렁이 담넘기 보다 더 쉽게 부모를 요리한다. ‘얘가 천재인가?’ 싶을 정도로. 아이의 수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금 전에 “안 돼” 했던 것을 웃으면서 흔쾌히 허락해 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전략의 핵심을 분석한 결과는 뻔하면서도 단순했다. 명확한 목표 의식. 목표가 정말 진실로 대단히 졸라 뚜렷하다.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그것만 생각한다. ‘안 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10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목표는 뚜렷하고 강력하다. 예상치 못한 순간, 포기하지 않고 들이대는 정신은 배우고 싶을 정도이다. 이제 우리 아이는 조금 더 진화해 일명 참여시키기 전략을 쓰고 있다. 까까와 초콜릿을 먹고 싶으면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거 엄마 줄게. 먹어봐~” “하이 좋아하는 거잖아. 그런데 엄마 주는고야~?” 게임 끝. 아이는 이렇게 성공의 경험을 쌓아간다(라고 포장해 본다.)
울어서 모든 욕구를 해결하는 그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엄마. 쌍둥이들의 엄마. 기관에서는 이런 애들이 없다는 찬사를 듣는 쌍둥이들이라 자기만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이렇게 지낸 게 2년이 넘었다고, 밖에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가 없다고. 친한 언니를 만나 육아 고충을 털어놓는데 눈물이 호흡처럼 흐르다 멈추다를 반복했고 영상 하나가 남편에게만 공개되었다. 소리를 지른다. 소리라기보다는 악이다. 악을 쓰면서 무언가를 던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가슴에 맺힌 무언가가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 안쓰럽다. 아이들을 향해 내지르는 크고 높은 고함 속에 절절한 '고통'이 느껴졌다. 내 눈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내 자식도 아닌데, 내 친구도 아닌데 나도 같이 너무 서러웠다. 쌍둥이 엄마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지만 아니, 엄마가 제일 불쌍했다. 쌍둥이 엄마도, 나도. 엄마들 참 짠하게 산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그녀의 시간이 짐작되었다. 설득과 설명이 없어도 그녀의 마음이 술술 읽혔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없고 내 말대로 하는 이 없는 통제력을 완전히 잃은 삶 속에서 잘해보고 싶은 그 마음. 반복되는 좌절과 무력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아이가 잘못 자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자책, 켜켜이 쌓이는 후회 3종 세트가 뜨거운 돌덩이가 되어 내 자아를 짓누르다 못해 분열시킬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나도 그랬다.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해 미친 여자처럼 발을 쿵쿵 구르고,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리모컨도 있는 힘껏 던졌다. 적당히 눈치껏 하라는 마음으로 냉장고 문이 부서져라 닫기도, 참아야 하는데 참아지지는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온몸이 댕댕 울릴 정도로 가슴을 탕탕 내리쳤다. 아. 이별의 고통이 아플까 육아의 고충이 고될까.
공감을 넘어선 일체감은 처음이었다. 쌍둥이 엄마를 보며 그간 가슴에 쌓여온 감정의 찌꺼기들이 한꺼번에 부유했고 그 사이에 서 있는 내가 보이는 기분이었달까.
나도 힘들었지.
그런 시간을 지내고 버텨온 나도 참 안쓰럽다.
좀 서럽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동지가 된 것 같다. 아이를 낳고 53개월, 만으로 4년 반이 지났는데 이제야 동지로 느껴진다. 그녀가 나의 동지가 된 오늘 진짜 엄마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