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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Apr 30. 2024

체육대회를 읽어드립니다

 대충 구경이나 하다가 박수 좀 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결과와 순위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체육대회는 선생도 미치게 한다. 지금까지 여섯 번, 그중에 우승이  이다. 당한 승률을 자랑하는 나의 체육대회. 그날이 또 오고야 말았다.


 체육대회든 합창대회든 무슨 대회만 했다 하면 싸우는 건 국률이요, 결국에 누구 하나 눈물이 터지는 것이 공식이기는 하지만 올 해는 유독 어려웠다. 학급 구성에서 나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이 감수해야만 하는 특수한 면이 있었고 대회를 앞두고 불평과 불만이 폭주했다. 그럴 거면 하지 말라는 말을 내지르기엔 아이들이 짠했다. 그래서 우승하고 싶었다. 내가 바란다고 되는 우승이 아니건만 우승을 향한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담임존심 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애들 다른 반 말고, 얘네, 우리 반 2학년 1반이 제발 꼭 우승했으면 했다. 체육대회 당일 아침은 물론이었다. 언제부터 기도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별 걸 다 기도한다.


 첫 경기에서 1등. 시작이 좋으니 느낌도 좋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나. 오전 경기까지 치른 결과 꼴찌. 꼴찌여도 3등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지만 위로가 될 리 없다. 남은 경기는 줄다리기와 이어달리기뿐인데 1위를 달리고 있는 3반은 너무나 월등하다.


 부전승으로 줄다리기 결승에 올라있긴 했다. 하지만 체급이 중요한 줄다리기에서 우리 반이 3반을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아이들은 남은 두 경기 결과를 이리저리 예상해 보며 최종 점수를 요리조리 계산해 보지만 종합 우승은 요원한 상태, 현실적으로 그랬다. 줄다리기를 지고 나면 이어달리기는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종합 2위였다. 그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일단 꼴찌는 면하자고 했다. 그렇게 오후 경기가 시작됐다.


 3반에 하무적 빈이 있다. 빈이는 작년에도 판에 힘을 주지 않았다. 기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서인지 첫 경기 지고  남은 판에 힘을 쏟아 승리를 겼다. 분명 단체전인데 한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나 중요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올해 예선전에서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 대결은 우리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다. 빈이는 간을 볼 테니. 점심시간, 힘을 응집시키는 과학적 원리스팀박(과학선생님)에게 물었다.


"샘 벌려? 좁혀?"

"좁혀요. 팔 엇갈리게. 그리고 누워."


배운 대로 적용한다.

"얘들아 좁히래. 좁혀. 좁혀."


아이들이 다시 반복한다.

"얘들아 샘이 좁히래. 좁혀. 좁혀."


 아이들 나름대로 세운 전략은 제일 앞선에 남자아이들 몇을 배치하고 중앙에 여자아이들, 그 뒤로 나머지 남자아이들이 서는 것. 제일 뒤편에 힘 좀 쓴다 하는 아이들이 포진해 있다. 빈이를 능가하는 아이들은 없지만 그래도 작전을 넣어본다.  


"누워. 알겠지? 누워."

"샘 연습 때 해봤거든요?

근데 미끄러져요."


 평소 말 몇 마디 나눠본 적 없는 윤이가 대꾸를 다 한다. 그래도 해보자고 했더니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턱을 아래 탁 말한다.


 "해 볼게요."


 끄러미 보는 거 뭔데. 턱 왜 치는데. 해보겠다는 말 왜 그렇게 하는데. 플러팅이야 뭐야. 뭐가 이렇게 든든해. 든든하기가 설렐 지경인데 아이들 마음이 느껴진다. 하마터면 착각할 뻔했다. 정말 이기고 싶은 건, 내가 아닌 아이들이다. 나보다 아이들이 더 원하고 있다.


탕!

총소리와 함께 나는 나의 일을 시작한다.


"누워!"

"누워!"

"누워!"


  아이들 명, 명과 눈이 마주친다. 줄다리기에 무슨 한 맺힌 사람처럼 악을 쓴다. 왜 그러는지 여태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줄다리기는 도대체 참을 수가 없다. 입뿐이랴. 눈으로도 외친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손을 공중으로 뻗어 민다. 허공에 팔을 뻗어 밀어주면 아이들이 그렇게 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민다. 밀리지도 않는 공기를, 산소를, 먼지를 밀고 또 민다. 예상대로 판은 이겼다. 3반 아이들이 깜짝 놀라 하자 아이들이 불쾌해한다.  


"샘 쟤네 연기하는 거예요. 빈이 안 해놓고 저래요."


 이번에는 빈이가 분명히 제대로 할 것이다. 남은 두 판을 내리 질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담임이 할 일은 더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 아까 밀었던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제 반대 방향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미는 것뿐이다.


탕!


"누워!"

"누워!"

"누워!"

"누워!"


 또 민다. 계속 민다. 당장이라도 밧줄을 잡아 힘을 보태고 싶지만 꾹 참고 민다. 그저 민다. 누으라고 외치며 민다.


어. 밀린다.


착시처럼 내가 미는 방향으로 아이들이 는 것 같다. 이렇게 반가운 뒷걸음질이 있을까. 끝을 알리는 총소리가 다시 울리고 우리 반 편에 있는 손이 올라간다. 경기가 끝났다.


  마주 선 두 반 아이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 3반 아이들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가 그 자리에 서 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결과에 깡충깡충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간다. 아이들 눈이 모두 반달이다. 약속한 것처럼 입이 이렇게 벌어져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돌아버리게 기쁜 순간. 이렇게 체육대회에 중독된다.  


  '경기 중 발작하지 말 것'. 학년부장님이 공지하신 주의사항 중 하나였다. 전날 종례 때도 체육대회 아침에도 두 번이나 읽어줬는데 발작하는 자가 종국에 나타났다. 포효한다. 멈추질 않는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놀랍다. 그렇게 좋을까. 줄다리기가 그럴 일인가. 어디 뭐 시도 대회 나간 것도 아니고 고작 교내 체육대회, 꼴랑 세 반 중에 1등 한 것이 이렇게도 이렇게까지 좋아 난리를 칠 일인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팔꿈치를 허리로 당기면서, 누구든 눈만 마주쳤다 하면, 그게 교장선생님이어도 개념치 않고 포효하는 미친 자. 발작하는 나를 보며 학년 부장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음껏 환호하고 함성 지를 수 있는 날이다. 너희에게도 나에게도 오늘은 그런 날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너희들과 손 한번 부딪칠 일이 없다. 얼굴이 가까워질 때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을 내밀어 본다. 다들 옥수수가 활짝이다. 그렇게 '짝'한다.


 이거지.

 이 맛이지.

 이 맛에 담임한다.  


 해마다 우리만의 올림픽이 열리는 뜨거운 자리. 내가 일하는 곳, 여기는 학교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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