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노멀>을 읽으면 생기는 일

by 손사쁨

단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다.

“자기야 그건 당연한거잖아. 아니 답답해서 그래. 그럼 정확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어? 그게 있어야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지가 얼마나 시간을 잘 관리하며 실천하고 있는지 연설을 시작했다. 축구는 하고 싶고, 나는 아이랑 단 둘이 있는 걸 두려워하고 그래서 본인이 새벽 축구를 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그마저도 갈 때마다 허락을 받지 않느냐고. 부동산 공부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원하는 게 있으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너무 당연한거라고. 그 얘기는 작년에도 하지 않았냐면서 정확히 나보고 뭘 하고 싶은지, 하고 싶은 게 있긴 한지 말 수 적은 남편이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2022년 가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23년은 글쓰기로 시작해 브런치로 마무리 했고, 이 모든 과정과 내용을 남편은 알고 있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한 것 까지도. 그런데 나에게 하고 싶은 게 있긴 하느냐 묻는다. 대가리가 돌이라 정말 몰라서 물은 걸까, 아니면 돌려 까는 걸까. 그래 놓고는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하란다. 병도 주고 약도 준다.


글쓰기 숙제를 제출해야 했던 날, 아이가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고 연락이 왔었다. 아이가 잠들었다는 소식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 것만 같은 기쁨을 준다. 양가 도움 없이 오로지 단둘이 가정을 건사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지치지 말라고, 하루쯤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같기도 했다. 개운함과 상쾌함으로 온 몸은 각성되고 최상의 컨디션이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남편이 아이를 침대에 눕혀 놓고 거실로 나오더니


“글 썼어?”


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과 얼굴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애 하원 시켜서 이만큼이나 밖에서 놀아주고 재워서 들어왔더니 넌 여태 아무 것도 안하고 글만 쓴거니?’


예민한 여자의 억측이나 궁예 놀이가 아니다. 정말 그랬다.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한데 뭐? 날 돕겠다고? 이상하게 남편이 하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자주.


시원한 물을 단숨에 들이키듯 주언규님의 <슈퍼노멀>을 2시간 만에 독파했다. 완독의 기쁨이었을까, 소요시간에 대한 뿌듯함이었을까. 마음이 상기된 상태였다. 사그라들고 있었던 동기에 산소가 공급되면서 불꽃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고, 명료하지 못한 내 목표부터 바로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희망으로 부푼 마음에 인상 깊은 내용을 공유하려 했던 대화가 나의 모자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끝났다. 실천하지 못하는 나. 실행하지 못하는 나. 행동하지 못하는 나. 심지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나. 이렇게.



“자기 화났어?”

“왜 화난 것처럼 말해애.


계속 웃고 있었다. 내 기분이 망가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나를 향한 남편의 평가질에 애교섞인 말투로 반응하고 있던 나는 참 멍청하다. 천천히 자각했고 급속히 가라앉았다. 입은 닫혔고, 표정은 굳었다. 그렇게 정식 코스를 밟아가며 나의 불쾌해짐을 무언의 언어로 알렸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난 자기가 글을 쓰면 정말 잘 쓸 거라고 생각해.”


오호라. 나의 목표를 물은 것은 ‘돌려깜’이 맞았다.


'글 쓰겠다면서 왜 안 쓰고 있니? 정말 하고 싶은 게 맞긴 해?’


이거였던 거다. 그의 목표는 뭐였을까. 망신주기? 무안주기?그 동안 드러내지 않은 속내였을까. 아니면 목표 없이, 의도 없이, 생각 없이, 배려 없이 느낌대로 내지른 실수일까. 뭐가 됐든 바늘이 되어 나를 찌른다. 두 시간 만에 책 한 권을 읽어낸 성취감, 내용이 주는 긍정적인 자극으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을 순식간에 다 죽여놨다.

우리 남편 정말 죽여준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