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30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중요한 시기가 있다.
엄마 젖을 뗄 때
기저귀를 뗄 때
어린이집에 갈 때
초, 중, 고, 대학 입학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결혼할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정년을 맞이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인간은 ‘환경 속에 인간(person in environment)’이므로 어떤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인생에 모든 시기가 중요하겠지만, 오늘 주제는 20대와 30대에 관한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중반 ~ 30대 중반, 이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나름대로 자기 철학과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 때 자기 철학과 기준을 분명하게 세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는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이 시기는 그동안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된다.
간혹 우스갯소리로 평생 놀고먹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노동의 대가로 수입이 생기고 그 돈으로 밥도 먹고 집도 얻고 차도 살 수 있다. 이는 불변의 진리다.
(꼭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직업인의 삶을 살게 된다. 회사에 입사하면 스스로 성과를 만들어 내고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며, 자기 능력을 200% 보여줄 때 그에 합당한 대우(급여, 승진, 인정 따위)가 뒤따르게 된다. 그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묘한 인간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좋은 것, 나쁜 것, 옳은 일, 옳지 않은 일을 두루 경험함으로써 그때 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수많은 고민을 이 시기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경험이 쌓이고 눈치가 생긴다. 이 같은 경험은 다음에도 대처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좋게 말하면 자기 철학과 기준이 생기는 시기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 아집이 생기는 시기다.
인생관, 직업관, 종교관, 정치관 따위가 이 시기 10년 사이에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배움과 경험을 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주로 한쪽의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은 그 정보와 경험이 곧 인생, 직업, 종교, 정치관으로 굳어지는 듯하고,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인생, 직업, 종교, 정치관이 열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후자는 사십, 오십, 나이가 들어도 보편적인 상식에 따라 인생 직업 종교 정치를 실현할 가망이 높아 보이나 전자는 그 반대가 될 가망이 매우 높다.
최근 문제가 되는 (광화문 집회 참가자의 코로나 확진자 증가) 개신교인의 행태가 그렇다. 무엇이 올바른 신앙인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참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상식을 벗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시기에 올바른 종교관을 세우지 못하고 편향된 정보를 취했을 가망이 높다고 본다. 참고로 필자의 종교도 개신교다.
얼마 전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에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그 친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형 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의사협회 파업 때였다. 10년 만에 보낸 친구의 문자를 받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의사를 북한으로 보낼 수 있는 악법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 정부와 의협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객관적인 사실만 논하고 싶다. 친구는 분명 여러 사람에게 같은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자신의 부당함을 호소함으로써 주변 사람을 설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성과 논리가 전제 조건이다. 주장에는 반드시 논증이 뒤따라야 한다. 친구가 보낸 ‘이 법이 통과되면 심지어 의사를 북한으로도 보낼 수 있다.’라는 말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는 사실이 아니라 편향된 정보에 의해 객관성을 상실한 것이다.
10년 전,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문자를 읽고 내 친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친구가 의사가 된 이후로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배움과 경험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친구를 보며 느낀 것이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어떠한 이유로 객관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친구는 앞으로도 편향된 방향으로 생각이 굳어갈 가망이 높아 보인다. 결국, 인생을 바르게 잘 산다는 것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전문직이든 아니든 상관관계가 크지 않아 보인다.
학생 때 함께 울고 웃으며 우리 사회를 걱정하던 대학 친구가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변해버린 모습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분명 그는 열정적이고 뜻이 분명해 보였으며,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올곧을 것 같았는데 졸업 후 10년 사이에 변한 것이다. 간혹 정치인들이 ‘학생 때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당신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 하는 것처럼.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철학을 지키며 사고를 확장해 가는 이가 있으니.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이 시기에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방식으로 배움을 좇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는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이다.
#. 그럼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야 할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사람
배움을 즐거워하고 배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시간 내는 사람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도 배우려 하는 사람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을 세워주는 사람
이런 사람은 1년만 지나도 말과 행동, 생각의 깊이가 달라져 있음을 경험했다. 특히 20대, 30대라면 자기 철학과 기준이 형성되는 이 시기에 이런 사람을 가까이했으면 좋겠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참 좋은 사람들과 그 시절을 보냈다. 대구, 서울, 인천, 김제까지 연고도 없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지만, 좋은 동료가 늘 곁에 있었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고백한다.
어느덧 40대를 살아간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를 책선 해줄 동료를 가까이하며 살고 싶다. 남은 인생도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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