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블리 Oct 15. 2020

엄마가 보고 싶다는 엄마

부모가 되어보니 깨닫는 것들



2017년 12월 30일,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현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어머니의 첫마디는 몹시 떨리고 불안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좋지 않은 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외할머니 부음訃音이었다. 회사에서 하던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장례식장이 있는 대구로 출발했다. 외할머니는 92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다. 노환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어머니의 유년 시절을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정신이 맑으셨다. 명절이면 증손주 손에 쥐여 줄 용돈을 미리 준비할 정도로 아이들을 예뻐하셨고, 우리 수현이가 장가를 참 잘 갔다며 입이 마르도록 손주 며느리를 칭찬했다.


나의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외갓집 추억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홀로 기차를 타고 놀러 갈 정도로 외갓집을 좋아했다. 그렇게 자라온 나였기에 외할머니의 죽음은 큰 슬픔이었다.


하지만 외할머니 부고에 누구보다 슬퍼했을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어머니다. 어머니는 종종 어릴 때 고생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곤 했다. 삼촌들은 모두 학교에 다녔지만, 어머니는 아홉 살 때부터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주로 과일 장사를 했는데 열차를 이용하는 손님이 어머니의 주요 고객이었다.


1950년대, 6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열차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서 역에 한 번 정차하면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어머니는 기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 열차에 올라가 과일을 팔았다. 정신없이 팔다 보면 기차가 출발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과일을 자식처럼 품에 안고 겁도 없이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던 전설 같은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외할머니는 매일 새벽 기적 소리를 듣고 엄마를 깨웠다.


“영순아~ 기차 온다.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라!”


엄마 나이 아홉,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나이다. 내 딸이 이제 아홉 살이다. 한창 부모 품에서 응석 부릴 나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우리 엄마에게만 돈을 벌어오도록 했는지 외할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그 시절의 안타까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엄마가 번 돈으로 외갓집은 밭도 사고 집도 새로 지으며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 모든 자식에게 소중하다. 엄마의 존재는 아빠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 열 달을 엄마 배 속에 머무르고 모유 수유 과정에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엄마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어머니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눈 뜨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어머니를 꼭 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외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날, 어머니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그날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현아,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은 데 들을 수가 없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어머니의 슬픔이 온전히 느껴지니 내 마음도 아렸다.




내 주변에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친구가 더러 있다. 친구에게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하고 목 놓아 부르고 싶지만, 엄마가 곁에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슬픔을 느낀다고.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부모님을 떠나보낸 사람의 슬픔과 그리움이 얼마나 큰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어느 정도 짐작할 뿐이다. 머지않아 그 아픔을 직면하게 되겠지만, 부디 그 일만은 천천히 오길 바란다.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신이 무엇 때문에 삶과 죽음을 공존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한다. 그 일은 매우 슬프고 괴롭고 힘든 일이다. 머지않아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하고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가기 때문일 것이다. 깨달음을 얻을수록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성숙해지는 듯하다.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평생을 자식 걱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요즘은 매일 아침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한다. 바빠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꼭 전화한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자식 사는 이야기 들려주는 것이 전부다. 그것만으로도 부모님은 안심하고 지내실 수 있다. 이 글을 읽었다면 오늘은 꼭 부모님께 전화하길 바란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사랑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자주 표현하자.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