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야기를 꺼내기 망설이는 이유

퇴직에 진심

by 나은권

"10년 뒤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여기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UCLA의 심리학 교수 할 허시필드(Hal Hershfield)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실험을 하고 있다. 뇌활동을 측정하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속으로 피실험자들을 들여보내 뇌를 촬영해 봤다. 그리고 2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하나는 "현재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였고 두 번째 질문은 "10년 뒤 미래의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현재 나의 모습을 그릴 때는 뇌 활동이 분주하게 이뤄졌는데, 미래의 나를 떠올릴 때는 뇌 활동이 급격히 둔화되었다. 내일의 나도 분명히 나일 텐데.. 놀랍게도 인간의 뇌는 미래의 나를 생각할 때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나 흥미 없는 연예인 릴스를 볼 때와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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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일하다 보면 은행을 찾는 고객분께 적은 금액이라도 퇴직 준비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면 말이 끝나기 전에 "나중에 할게요"라며 자릴 나서는 경우가 많다.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말이다. 이는 위 실험 결과처럼 미래의 나도 분명히 나임에도 불구하고 뇌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을 심리학에서는 '미래 자기 연속성(Future Self-continuity)'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얼마큼 동일하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정도를 의미한다. 미래 자기 연속성이 높은 사람은 10년~20년 뒤 나의 모습을 지금의 나와 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준비를 하는 반면, 낯선 타인처럼 느낀다면 미래 자기 연속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예외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노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걸.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은 너무나도 정직하게 우리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뇌가 미래의 나를 남들처럼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퇴직연금'이라는 강제 시스템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통해 미래의 내 모습을 계속 상기하고, 쌓이고 있는 퇴직연금 숫자를 보면서 미래의 나를 잊지 않게 챙겨주는 것이다.




퇴직급여는 근로자들의 고용이 종료될 때 그동안의 일한 대가로 회사가 근로자에게 당연히 지급하는 급여(돈)를 의미한다. 이때 퇴직급여는 적립하는 방식에 따라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

피곤한 우리 뇌를 위해 퇴직급여제도의 역사 및 의의를 모두 외울 필요 없다. 딱 이것만 기억해 두자.


1) 퇴직금 제도 : 회사가 근로자들의 퇴직금 준비를 위한 자금을 사내에 내부적으로 쌓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퇴직금 제도이다. 회사 장부상으로만 적립이 되다 보니 회사가 갑자기 망하게 되면 내 노후도 함께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한 연금과 일시금 중 수령 방식 선택이 아예 #불가하다. 그러다 보니 노후자금이 아닌 급한 용도로 써버릴 가능성이 높다.


2) 퇴직연금 제도 : 기존 퇴직금 제도의 단점을 보완해서 만든 제도가 퇴직연금이다. 가장 큰 특징으로 내부가 아닌 외부(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에 퇴직급여를 맡겨놓는 것이다. 회사 경영 상태와 별개로 외부의 안전한 금고에 퇴직 재원이 보관되고 있어, 회사가 망하더라고 내 퇴직연금은 안전하다. 퇴직 시 수령방식도 나누서 받는 연금방식과 일시금 방식 중 선택할 수 있다.




퇴직금 vs. 퇴직연금


일단 단어 자체가 비슷해서 헷갈리기가 쉽다. 그럼에도 이 번장에서는 퇴직연금이 '외부금융기관에 위탁되어 운영되고 있다'라는 것만 꼭 기억해 보자.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퇴직급여제도가 퇴직금제도인지 퇴직연금 제도인지 확인해 보면 좋겠다. 나중에 퇴직할 때쯤 얼마 정도의 돈이 내 손에 쥐어지는지 계산기도 두드려보자. 이는 단순히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미래의 내가 비로소 갖게 될 구체적인 액수이므로, 현실적으로 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준비해야 할' 동일한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은행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나중에 할게요”를 듣고 있다. 부디 그 나중이 너무 멀지 않기를 속으로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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