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2
바람이 분다. 이렇다 할 방법없이 바람을 맞는다.
주로 무해하고 때론 기분이 좋기도 하니 별 말 없이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레 부는 바람을 맨몸으로 막아낼 방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큰 저항 없이 바람은 우리를 스치고, 우리는 바람을 겪어낸다.
시간은 이런 바람 같다. 아무 저항감 없이 스쳐가는 바람도 수많은 겹을 덧대어 돌마저 깎는다. 의식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도, 나를 스치며 어제의 기억을 깎아낸다. 돌이 풍화에 깎이듯,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 깎는다.
‘시간이 멈춘 듯’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는 약은 확인되지 않은 길거리 장수에게 산 것인지,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스님이 준 답이었나. ‘시간은 약이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그 시간이 멈춰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조금 보태 거진 일년 전, 대상포진을 앓으며 침대에서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몇 주를 보냈다. 약보다 거세고, 성실히 일하는 신경통을 견디면서 그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나타날 텐데,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영원 같았다.
영원은 현재의 지속이라 했던가. 차도(差度) 없는 고통의 현재가 무한히 지속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 듯 시간이 지나긴 했고, 어느새 약을 먹지 않아도 아프지 않았고 (약간의 후유증을 제외하곤,,) 반년도 더 지난 시간을 어느새 보내왔다. 아팠던 기억도 시간에 닳아, 하루가 더 지나갈 수록 옅어진다.
슬픔을 오롯이 견디는 우리의 마음에는 굳은 살이 더디 박힌다. 뒷꿈치에도, 기타를 잡는 내 왼손가락에도, 턱걸이를 위해 잡은 봉이 닿는 손바닥에도 시간의 반복이 쌓이면 어느새 딱딱한 굳은 살이 잡힌다. 하지만, 내가 이렇다 할 방법으로 막을 수 없는 슬픔에 대해선 여전히 여린 살로 그 벅참을 견뎌내야 하는 것 같다.
아직도 어려서인지, 제일 가는 엄살꾼이라 그런지, 이미 생긴 굳은 살보다 더 거친 슬픔을 맞아서 그런지, 당장 알 도리는 없지만, 가만 앉아 바람같이 지나는 시간을 맞으며 되뇌는 말은 ‘시간에 닳아라. 영원같은 하루야, 지나가라.’이다. 되뇌는 만큼 영원같은 하루는 짧아질 것이라 믿을 뿐이다.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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