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당신을 지탱하는 것에 대해서
20대인 당신은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단다. 그런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온다. 당신과 얼굴이 똑같이 생겼는데 행동거지는 시시껄렁하고 성격은 양아치 같다. 자신이 악마란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하루씩 더 살게 해줄 테니 그때마다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하나씩 없애자는 거다. 어떤 걸 없앨지는 자기 맘이란다. 당신은 이 제안에 응할 것인가.
너 하나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어
세상의 무언가를 하나씩 없애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문제는 당신에게 온 놈이 악마라는 것. 그 녀석은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하나씩 없애간다. 주인공(사토 타케루)에겐 그게 전화, 영화, 시계, 고양이였다.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에 딸린 것도 함께 사라진다. 물건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추억과 관계도 사라진다. 전화가 사라지니 첫사랑과의 추억과 관계가 사라졌다. 주인공이 첫사랑과 처음 이야기를 나눈 건 잘못 걸린 전화 때문이었다. 영화가 사라졌을 땐 영화광인 절친과의 추억과 관계가 사라졌다. 주인공이 처음 말을 걸었던 때, 그 친구는 강의실에 홀로 앉아 영화 잡지를 보고 있었다.
주인공이 더 이상 악마에게 연명하지 않겠다고 말한 건 네 번째 날. 악마가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말한 이후다. 고양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을 이어주던 존재였다. 주인공과 같이 사는 고양이 역시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기 전 함께 키우던 고양이다. 고양이는 곧 어머니다.
상실은 존재보다 크다. 그래서 악마가 내미는 제안은 지독하다. 하지만 그 지독한 제안 덕에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길 기회를 얻는다. 자신의 인생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너를 만나서 다행이야
축구, 책, 라디오, 편지.
내 삶을 이루고 있는 단어 4개는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이다. 저마다 추억이 어려 있고 인연이 녹아있다. 친구가 담겨있고 가족이 담겨있다. 덕분에 황량해질 수도 있었던 내 삶이 조금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참 운이 좋았다고, 그것들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소중한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늘 곁에 있기에 빈자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우리에게 영화는 묻는다. 없어지면 당황하다 못해 절망할 것들이 무엇이냐고, 차라리 그만 사는 게 나은 세상은 어떤 풍경이냐고.
설정은 판타지적인데 그걸 풀어가는 방식은 지극히 담담하고 현실적인 영화가 있다. <어바웃 타임>이 그랬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그랬다. 두 영화 모두 마지막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영화도 그렇다. 보고 난 후 고민하게 된다.
나의 추억을, 인연을, 삶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난 지금 그걸 소중히 여기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