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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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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Kim Apr 14. 2016

엄마의 남자친구

  엄마는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다. 마주앉으면 숨을 들이내쉬는 것까지 보이는 조그만 4인용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안주는 소박하다. 때론 조미김, 때론 진미채볶음, 때론 데친 오징어와 초장. 두 남녀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친구 얘기, 아랫집 얘기, 자식 얘기를 두서없이 나눈다. 주방과 이어진 거실의 TV 소리는 묻혀, 식탁 닿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와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꾀죄죄한 모습에 많이 지쳐 보이던 그녀였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만난 그녀는 볼품없었다. 한낱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연민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그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몰랐다. 이혼을 몇 달 앞둔 그때, 전 남편과 감정소모가 심했던 그때, 모든 상황이 그녀를 볼품없게 만들었단 것을.


  그녀의 아들은 또렷이 기억한다. 10년도 더 됐을 어느 날 밤, 현관문에서 엄마가 아빠 앞에서 무릎 꿇고 하소연하던 모습을.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방 저편에서 들리는 흐느낌만으로 충분히 그려지던 장면을. 현관문과 가까운 그 방으로 들어오던 겨울철 한기를.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귀로 꽂히던 온갖 소리를. 방문 밖으로 나가 그만 하라고 덤비지 못한 자신을. 분명 잘못은 아빠가 했는데 엄마가 용서를 비는, 그 좆같은 순간을.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누구든 볼품없어지기 마련이다. 어릴 적 해경이 되고 싶어 했던 그녀도, 한때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회사를 나온 그녀도 사라진다. 맞벌이를 하며 자식을 어떻게든 잘 키우려 했던 그녀마저 사라진다. 결국 꿈을 펴지 못한 채 20대 초반에 결혼한 그녀가, 매일 500원을 쥐어주며 초등학생 자식을 두고 일을 나가야 했던 그녀가, 남편과의 다툼으로 자식을 떠나 별거해야 했던 그녀가, 양육권마저 잃게 생겼던 그녀가 남을 뿐이다.


  초라함만 남았을 시기의 그녀를 누군가가 발견했고, 반응했다. 그는 진득하게 그녀를 위로했고 함께 해줬다. 경계하는 그녀에게 잘 보이려 이곳저곳 데려가며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다. 여느 남녀가 그렇듯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마주 웃었다. 그 노력이 쌓여 그는 이제 그녀와 한 지붕 아래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마주 웃는다. 주말마다 같이 장을 보며 냉장고를 채운다. 둘만의 여행을 담은 액자도 하나씩 늘어간다. 2년 넘게 같이 사는 동안 집안 풍경은 좀 더 온화해졌다.


  그를 어색해했던 그녀의 자식들과도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녀의 딸과는 친구가 됐다. 둘은 서슴없이 서로를 참견하고 서로에게 요구하며 진짜 ‘가족’이 돼간다.


  그녀의 아들과도 조금씩 말문을 트고 있다. 운전연습을 도우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공유해간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녀의 아들도 그를 의지한다. 데면데면한 자기 대신 엄마를 즐겁게 해주는 그를, 마음으로 의지한다.


  엄마는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다. 서글서글한 얼굴로 미소를 띤 채 친구 얘기, 아랫집 얘기, 자식 얘기를 두서없이 하고 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다 가끔씩 투정하듯 목소리를 높이며. 얘기가 끊겨도 불편한 기색 없이 남자친구와 마주보고 있다.


  더 바랄 게 없다는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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