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트]를 봤는지 모르겠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비트]가 원작인 영화다. 개봉했을 당시에 고3이었는데 뭐랄까 당시의 학생들 그리고 외모로는 발치에도 못 따라가지만 특히 남학생들에게 영화 [비트]는 ‘wannabe’ 같은 영화였다. 물론 영화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영화 속의 주인공인 ‘이민’이 되고 싶었다 랄까? 잘 생기고 순수하지만 싸움을 정말 잘하는 멋들어진 남자.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 담배를 꼬나물고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란… 이민을 연기한 배우는 정말 배역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남자가 봐도 반할 수밖에 없는 정우성 님이었다.
극 중에서 이민이 친구인 환규(임창정 님)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교무실로 끌려가 혼나면서 ‘빠따’를 맞는 장면에서 체벌은 금지된 거 아니냐며 선생의 야구방망이를 가로채 진열장을 때려 부술 때의 그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는 아직도 가슴속에 선명하다. 실제로 고3 시절에 수능을 보고 성적을 기다리면서 학교에 가면 할 게 없는 고3들을 위해 영화를 많이 보여 줬는데(지금은 그런 게 있었나 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서…) 앞에서 이야기한 장면에서 모두를 환호를 보내며 박수를 치고 한 마디씩 욕을 내뱉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내용도 나온다. 이민의 여자 친구인 로미(고소영 님)가 있다. 부잣집 딸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당시 표현에 의하면 퀸카, 지금으로 말하면 엄친딸 혹은 금수저라고 할만하다. 로미는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만 놀기도 잘한다. 만년 2등인 로미의 친구는 그런 로미를 따라 해 보려다 오히려 성적만 떨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나도 그런 걸 따라 해 보고 싶었나 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따라 해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극 중의 로미처럼 공부도 잘 하지만 놀기도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시쳇말로 폼나지 않는가?
다른 글에서 지겹도록 이야기를 했다. 중고등 시절에 공부를 조금 했다고….(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그 시절에 내세울 만한 게 이거밖에 없어 계속 이야기하는 점 양해 바란다.) 중등 시절에 항상 전교 50등 안에서 놀았다. 그래서인지 고입시험이 어렵지 않았다.(지금은 중학교 때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가지만 당시엔 수능처럼 시험을 봐야 했다.) 고입시험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도 전교 50등 안에 들었다. 보통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모여들었기에 성적이 겨우 유지되거나 떨어지기 마련인데 냉정하게 이야기해도 조금은 안정적으로 중등시절의 성적(등수) 대를 유지한 것 같았다.
그렇게 고2 중반 즈음까지 성적을 유지했다. 서울대, 연대, 고대는 몰라도 서울에 있는 적당히 이름 있는 대학교는 아무렇지 않게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자만심이었는지 여유였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뭐라고 정의 내리기 힘들었다. 공부를 꾸준히 잘해 왔고 하는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놀 거 놀면서 해야 될 때 바짝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더해서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어울리는 시간도 많아졌고 그 무엇보다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았다. 공부는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하면서 쉬는 시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는 거야 하는 합리화를 바탕으로 아주 신나게 놀았다. 부자가 망하면 3년은 간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공부 잘하는 상황을 부자라고 해 보면 그렇게 놀기 시작했는데도 그다음 시험은 기존 성적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이때 여유, 자신감 등이 완벽한 자만심으로 하늘을 뚫어 버렸다. ‘어? 놀면서 해도 되는구나!’
그다음 시험까지도 괜찮았다.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신나게 놀았던 거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시작이었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면서 동시에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다른 글에도 이야기했지만 초등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가 시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엄마들이 좋아하는 스스로 알아서 자기 주도 하에 공부를 해 왔었다. 그런 놈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3년은커녕 1학기도 버티지 못하고 성적은 날개 잃은 새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이 하는 짓은 다 한 거 같다. 벼락치기, 커닝, 야자 째기 등등. 고3이 되면서 그런 행동들은 정점을 찍었다. 아 하하하하하하하 거꾸로 가는 내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돼 버렸다. 반항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 고3이 되면서 더 확실하게 놀기 시작했다. 고1, 2 시절을 다 합친 것보다 고3 때 논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나마 꾸역꾸역 유지가 됐던 성적은 나락을 향해 갔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붓는 결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2학년이 되면서 이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과를 선택한 결정에 의해 공부를 안 하게 된 건지 아니면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려고 그렇게 된 건지 조금 애매모호하긴 하다. 초등시절부터 적성검사 같은 걸 하면 언제나 항상 결과가 ‘사범대(이과)’였다. 초등시절에 처음 결과를 받아 들고선 무슨 소린가 했다.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했고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그냥 결과지를 나눠주고 말았다. 중학시절에 역시 비슷한 적성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같았다. 그때는 그래도 사범대라는 의미는 알았다. 선생이 적성이라는 거구만. 이과는 역시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 같으면 무슨 뜻인지 물어보진 못한다 할지라도 찾아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버린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적성검사 결과가 신뢰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람을 문, 이과 단 두 가지 학습 유형으로 나누는 것도 우습지만 초등시절에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내 성향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역사 수업이 옛날이야기해주는 시간 같아서 좋았다. 어렴풋이 그즈음부터 문과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학생이지 않았나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빈 교실에서 멋들어지게 대금을 부는 역사 선생님을 보고 그래 내가 갈 길은 저거구나! 역사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상황을 짜 맞추기 시작했다. 초등시절부터 적성검사를 하면 계속 사범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걸 보니 선생이 될 상이구나 하고 결정을 해 버렸다. 이과라는 단어가 거치적거리지만 나온 결과대로 100% 따라야 된다는 법은 없었기에 세부사항은 입맛에 맞게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래 좋아! 난 역사 선생이 되는 거다. 우리의 역사를 재미있게 때로는 아파하고 분노하면서 최근에 좋아하는 황현필 역사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가르쳐야겠구나 하고 다짐했었다.(이 다짐을 처음 하는 시기까지는 아직 학업을 놓기 전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마 내가 학업을 놓지 않았다면 교원대나 유수의 종합대학 사범대는 어렵지 않게 진학했을 것이다. 물론 진학을 한다고 선생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 아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