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반아 어西班牙語 2

by 이야기하는 늑대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스페인어였다. 영어와 비슷하면서 다른 스페인어, 뭐랄까 조금 더 장난스럽게 발음을 세게 굴린다고 해야 될까? 그런 느낌이 듣기에 너무 좋았다. 아는 거라곤 인사인 ‘Hola’와 매번 어딜 가자는 건지 ‘Vamos’ 밖에 없지만 발음할 때 나는 특유의 소리느낌이 좋았다. ‘게르랑 께르랑 꼬르랑’ 뭐 이런 느낌이다. 전혀 근거 없는 표현이지만 그런 느낌으로 스페인어가 귀 속으로 간지럽게 굴러들어 오는 게 좋았다. 그래서 ‘종이의 집’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본 드라마를 더욱 재미있게 본 것 같다.



기분 좋게 들리는 스페인어를 아내가 조금 한다. 물론 영어도 조금 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해외여행에서 할 수 있는 건, 짐을 싸고 들고 푸는 것 밖에 없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렇기에 아내가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예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문득 중학교 시절의 한 선택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전의 글에서도 몇 번에 걸쳐 뭐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중학생 시절에 성적이 좋았단 이야기를 많이 했다.(자랑거리가 그것밖에 없어서….) 중학생이 공부를 잘하면 고등학교를 어딜 갈 건지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고등학교를 가는 방법적인 부분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다양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근본은 변함이 없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일반계(당시엔 인문계), 특성화고(당시엔 실업계), 특수목적고(과학고와 외고를 위시한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 외에도 여러 형태의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를 어느 정도 했음에도 내가 아는 거라곤 공부를 조금 잘하면 인문계, 못 하면 실업계를 간다는 정도였다.(당시 기준으로 표현을 했다.) 전에도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지만 사실 중학교 시절에 내가 왜 공부를 스스로 알아서(엄마들이 바라마지 않는 정확한 자기 주도 학습을 실천했다.) 했는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현재까지 가장 명확한 이유는 ‘그냥’ 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운동부 활동을 했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공부를 잘했다. 그때는 초등학생들도 월말 혹은 단원 평가를 한 달에 근 한 번씩 치렀다. 그리고 등수를 매겨 상장을 줬다. 그 상장이 차고 넘쳐서 단 한 번도 액자에 넣어 걸어둔 적이 없었다. 버릴 수는 없어서 서랍에 넣어 두었다. 초등시절에도 알아서 그냥 했다. 엄마, 아빠는 안타깝게도 배움이 길지 못해 아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게 앞에서 이끌어 줄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분들이 아니었다.(물론 부모로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바른 길은 나름대로 잘 가르쳐 주셨다.)



아들이 공부를 잘하니 그저 좋아하셨던, 더욱이 본인들이 공부를 하라고 유난을 떨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잘했던 아들을 그저 기특하게만 바라보셨다. 인문계와 실업계의 구분은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구분이라 아들이 당연히 인문계로 진학은 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셨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앞에서 조금 더 끌어 줬다면 좋았겠지만 결국엔 내 문제였다. 그러니 내가 더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공부를 잘해서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특별한 걱정이 없어서 그랬는지 인문계와 실업계 구분 이외에는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중학교 3학년 당시 담임선생님도 조금 야속하다. 부모가 모르고 학생이 모르면 선생님이 조금 챙겨줘야 되는 거 아닌가? 얼굴은 물론이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선생 따위 됐다 싶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으셨겠지만 어느 정도 직무를 유기한 건 사실이다.



웃기지도 않게 이런 상황을 파악한 건 정말 뜻밖의 인물이었다. 두 칸짜리 방에 세 들어 살던 시절이었는데 주인집 큰 형이 어느 날 툭 질문을 던졌다. ‘너 공부 좀 한다며? 고등학교 어디 갈 거야?’ 하기에 ‘네, 뭐 그냥 인문계요.’라고 정말 자기 인생에 있어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의 무미건조한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형이 외고를 가 보라고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나름 ‘코칭’을 해 줬다. 인문계와 실업계 말고 ‘과학고’라고 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고등학교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냉정하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다음이 외고 정도 인건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형이 물어보기 전까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스스로도 마찬가지지만 왜 주변 아무도 나에게 외고 진학을 이야기해 주지 않은 거지? 엄마,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그럼 선생님은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시 사회 분위기상 감히 선생님에게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중1 때인가, 중2 때인가? 한문 시간에 숙제 좀 안 했다고 ‘빠따’를 50대나 맞는 그런 시대였다. 지금 같았으면 그 선생은 구속됐을 테지만 당시엔 그랬다. ‘체벌’이 너무 당연한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체벌이란 단어의 존재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겁이 많은 그리고 공부 잘하는 얌전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던 나는 감히 선생님에게 따질 수 없었다.(따져야 됐다.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혹여 건방지다고 몇 대 줘 터졌어도 죽이지는 않았을 테니 따졌어야 됐다.)



결국 잔잔한 호수에 형이 던진 돌멩이에 의한 파장은 그렇게 사그라들었고 별일 없었다는 듯이 인문계를 갔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청주외고의 실력이 타 지역의 외고에 비해 출중하진 않다. 그저 하나의 선택지로서 잘 몰랐던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면서도 그때 만약 외고로 진학해 ‘서반아 어’과를 선택해서 공부를 했다면 내 삶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해 본다. 단순하게 문/이과를 나누는 걸 참 싫어하지만 일반적인 이해를 위해 굳이 표현을 해 보자면 지극히 문과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는 내가 인문계에 진학해 이과를 선택하지 않고 외고를 갔다면 지금의 삶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있다. 현재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오만 짓을 다 하지만 현재가 더 악화된다는 이야기다.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돌아갈 수도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지 말고 조금 부족해도 지금의 현실을 잘 바꿔 나가라 뭐 이런 뜻도 있을 것이다.(영화를 보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외고 진학을 선택했다 한들 나라는 사람이 그대로인데 뭐 대단한 변화가 있었겠나 하면서도 신혼여행을 갔을 때 짐을 드는 비중을 조금 줄이고 ‘Hola’나 ‘Vamos’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대화를 스페인의 누군가와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최소한 스페인에서 묵었던 숙소에서 그러면 안 되는데 어쩌다가 아내보다 먼저 1층 라운지로 내려와 맞닥뜨린 직원을 보며 ‘빙구’처럼 웃기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페인 어라는 표현을 두고 굳이 예전 표현인 서반아 어를 쓴 특별한 이유는 없다. 표현 자체가 조금 재미있는 것 같다. 한자의 음을 이용해 발음을 비슷하게 내기 위한 옛날 사람들의 노력이 귀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표현을 주로 쓰던 시절에 왕성하게 활동할 정도로 나이를 먹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표현을 통해 아주 약간이나마 시대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것 같아 장난 삼아 써 본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