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반아 어西班牙語 1

by 이야기하는 늑대

겁이 많고 적음을 그 사람의 덩치로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의례히 상대적으로 겁이 없을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실제로 덩치가 조금 큰 사람을 마주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덩치가 큰 편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작지는 않다. 보다 정확한 수치로 이야기를 해 보자면 키는 181cm이며 몸무게는 83kg 정도다. 한창 자라던 중 고등학교 시절에 183cm까지 자라길 바랐지만 21살 때 군대를 가기 위해 받은 신체검사에서 181cm를 확인하면서 끝을 봤다.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늘 생각하는 다이어트를 통해 70kg 후반 혹은 딱 80kg이라는 몸무게를 바라지만 늘 80kg 초중 후반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다.



살이 가장 많이 빠졌을 때의 몸무게는 77kg인데 게임에 아주 완전히 빠져 있던 20대 시절이었다. 그리고 최근만 놓고 본다면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지금의 몸무게인 83kg 정도였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살이 조금씩 쩌 올라 얼마 전 까지는 80kg 후반을 유지했었다. 그 살이 죄다 빠진 계기는 아내가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조리원에서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빠졌다. 특별히 한 건 없지만 밥을 잘 안 먹었다. 안 그렇게 생겼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밥을 잘 안 먹는다. 그 이후로 83kg을 유지하고 있다. 아빠의 다이어트까지 성공하게 해 준 딸아이는 여러모로 효녀다.



이런 덩치를 가지고 있지만 난 겁이 조금 많다. 덩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해야 조금 더 어울릴 것 같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겁이라고 하는 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겁은 특히 경험해 보지 못한 걸 잘 못하는 부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나 예를 들자면 여행이다. 지금은 여기저기 여행을 잘 다니지만 이 전엔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성향이었다. 물론 국내여행을 겁이 나서 못 간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부분은 귀찮음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겁이 나서 하지 못하는 여행은 해외여행을 의미한다. ‘해외여행’ 지금은 설렘이 가득한 단어지만 예전엔 두려움이 앞서는 단어였다. 잘 몰라서 막연했기에 더 두려웠던 비행기 값부터 시작해서(비싼 것도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언어가 다르니 밥이나 제대로 사 먹을까 싶은 마음에 해외여행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해외여행 뭐 대단한 거 있겠어, 국내여행은 다 다녀 봤고?’ 같은 생각으로 해외여행을 애써 무시했었다. ‘국내도 갈 곳이 많은데 무슨 대단한 사람 났다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난리야. 다 겉멋 든 거야.’ 같은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었다. 다시 우선 국내여행으로 돌려 보면 한 때 커피 일을 오래 하면서 커피로 내 삶의 끝을 보자 하고 다짐했을 때도 박이추 선생(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로 핸드드립을 잘하시면서 강원도 커피 거리 조성에 일조한 분이다.) 카페에 가 보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 결국 한창 더운 7월 막바지 어느 여름날 다녀오긴 했지만 그만큼 여행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걸 귀찮아했고 두려워했다.



그랬던 내가 아내를 꼬시기 위해 여행 계획을 세웠다. 때는 2016년 8월 1일이었다. 주어진 일주일이란 휴가를 아내를 꼬시기 위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오해하지 마시라. 어디 섬 같은데 들어가 배를 끊어 버리는 그런 음흉한 계획은 아니었다. 모두 당일치기로 전국의 다양한 곳을 다니는 계획이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라 완벽하게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때 간 곳 중에 남해 ‘보리암’과 강원도가 생각이 난다. 남해 보리암은 통일신라시대의 그 유명한 해골물 일화가 있는 원효대사께서 창건하신 암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고 많은 곳 중에서 왜 보리암을 갔는지 잘 모르겠다. 여자를 꼬시기 위한 여행지로 안성맞춤인 느낌은 전혀 없는 여행지다. 더욱이 신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아내는 천주교 신자다. 물론 천주교와 불교가 은근히 왕래가 잦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져다 붙이기엔 그 근거가 미약했다.



한 가지 문득 스쳐 가는 생각은 청주에서 남해까지 거리가 꽤 멀다. 3시간을 넘게 달려야 할 것이다.(찾아보니 260km가 넘는 거리다. 휴게소 등을 들릴 걸 감안하면 거의 4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아마 그 긴 시간 동안 차 안에 단 둘이 있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뭐랄까 나름 괜찮다고 자부하는 언변으로 호로록 꼬시면 넘어오겠지? 뭐 이런 계략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나름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남해 말고 또 다른 여행지가 강원도였기 때문이다. 강원도 역시 남해만큼은 아니지만 꽤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자연스레 강원도는 어딜 갔는지 이야기를 해 본다면 역시 강원도 커피 거리 조성에 영향을 끼친 ‘테라로사’라는 카페와 ‘짬뽕순두부’를 먹으러 간 것 같다. 그리고 하루 이틀은 청주에서 그냥 가볍게 만난 것 같다. 그러면서 사귀게 됐다. 그렇다. 평생 여행 가는 걸 귀찮아하고 두려워했던 남자가 생전 해 보지도 않은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어쩌면 그 여행 계획은 일생의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여행 가는 걸 두려워하고 귀찮아하는 남자가 열과 성을 다해 스스로 계획을 세웠다? 거의 모든 걸 다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후로 원래 그랬던 것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건 아내 몫이 됐다.



사귀기 시작하고 보름 정도 지난 뒤에 군산을 갔는데 그때도 아마 아내가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 아내와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신혼여행은 대망의 해외여행을 가게 됐다. 공교롭게도 직전에 회사에서 일을 조금 했다고 격려 차원으로 동남아에 보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내 생에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나름 재미있긴 했지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많이 가보지도 않았지만 동남아 지역으로의 여행은 별로다. 여하튼 신혼여행은 스페인과 체코를 가게 됐다. 크~ 청주 촌놈이 정말 많이 컸다. 해외여행을 그것도 유럽이라니! 유럽이 대단할 건 없지만 뭐랄까 인식이라는 게 있어서 해외여행하면 유럽 등지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신혼여행 계획은 아내가 다 세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행 계획에 대한 나의 에너지는 아내를 내 여자로 만들기 위한 그때 다 써 버렸다. 그런 내가 국내여행도 아닌 해외여행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 비행기 예매부터 숙소 예약 등, 죄다 영어로 돼 있는 사이트를 내가 보고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체코 프라하까지 이어지는 장장 8박 9일인가, 9박 10일인가의 계획을 아내가 다 세웠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니 난 군말 않고 열심히 짐을 싸고 들고 풀고 하면 됐다.



결과적으로 스페인과 체코 모두 좋았다. 음식이 낯설지도 않았고(단 한 번도 여행 도중 음식을 먹으면서 이상하거나 역하거나 한 적이 없었다. 일주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두 나라의 모든 음식을 다 먹어 본 건 아니지만 먹어 본 모든 음식이 입맛에 딱딱 맞았다.) 스페인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가우디 성당’으로 더 유명한 성당이다. 지하철을 타서 성당명과 동명의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면 성당이 ‘왔냐?’하고 바로 인사를 한다. 청명한 스페인 하늘 아래 고색창연한 성당의 첨탑을 보는 순간 입을 쩍 벌리고 카메라(스마트폰)를 안 들 수가 없었다.



빠에야(스페인식 볶음밥), 달달한 상그리아. 하몽, 타파스, 맥주, 고성古城, 중간 기착공항이었던 이스탄불 공항에서의 튀르키예 아이스크림, 체코 길바닥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 체코 음식, 체코 맥주, 까를 교, 굴뚝 빵이라고도 불리는 뜨르들로(정말 많이 사 먹었다. 프라하를 걸어 다니는 순간마다 사서 손에 들고 다니며 먹었던 것 같다.) 등등등. 이제 시간이 꽤 지나 다 기억은 못하지만 정말 재미있었고 기분 좋았던 아! 이래서 해외여행을 하는 구나했던 그런 신혼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