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심하게 장난을 쳤다.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믿는 바가 있어서 그런지 그 장난은 더더욱 심했다. 친구들끼리 장난치다 어디 한두 군데 까이고 깨지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뼈에 금이 가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경우도 흔했다. 나 역시 친하게 지내는 다른 친구와 농구를 하다 실수로 친구 발목인가 무릎을 밟아 친구 인대가 늘어나게 한 적도 있었다. 애석하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바로 처음 농구를 가르쳐 줬던 친구와 쉬는 시간에 늘 그렇듯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우당탕탕 엎어지고 넘어지고 레슬링을 한 건지 씨름을 한 건지 빙글빙글 돌다 ‘빡’ 눈앞에 별이 오락가락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매무새가 조금은 날카로웠던 사물함 모서리에 내 코를 찍었던 것이다. 친구도 나도 어!? 정적이 흘렀다. 정말 깨지는 소리가 난 건지 그런 느낌이 든 건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깨지는 소리가 맞다면 사물함이 깨졌거나 내 코뼈가 부러진 소리일 텐데 어느 쪽인지 바로 확인이 되질 않았다. 그보다 조금 세게 박아서 그랬는지 나도 친구도 정신이 없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원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레 거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사물함이 아닌 내 코가 부러진 것 같았다. 코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려 일단 자리에 앉았다. 분명히 소리가 크게 들렸고 거울을 보니 내 코가 부러진 게 맞았다. 코, 그러니까 코뼈가 부러진 걸 텐데 이상하게 아프진 않았다. 부어오르는 걸 보니 상황이 조금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아픈 것보다 선생님과 엄마한테 혼 날 걱정부터 했던 것 같다. 코가 부어오르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그렇게 수업시간을 보냈다. 다시 쉬는 시간이 됐고 누가 이야기를 해서 담임선생님이 왔는지 우연찮게 왔는지 선생님이 알게 됐다.
선생님은 보자마자 혼을 내기보단 바로 사태 수습을 했던 것 같다. 일단 어쩌다 그랬는지를 파악하고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담임선생님의 차를 처음 타 봤는데 신기하게도 계기판이 당시엔 흔치 않던 디지털 방식이었다. 웃긴 건 그 와중에도 그 계기판만 눈에 들어왔다. 속도가 올라가면 바늘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숫자가 올라가는 방식이 너무 신기해 보였다. 근처 종합병원에 도착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신경외과로 찾아간 것 같다. 코뼈가 부러진 거 같은데 신경외과를 가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갔다. 맞게 간 건지 아니면 급한 대로 정말 부러진 게 맞는지 우선 확인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신경외과로 갔다.
제대로 찾아갔는지 신경외과 담당의사는 간단한 질문을 하고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 보자고 했다. 얼마 뒤에 엑스레이 결과가 나왔고 같이 보면서 개인병원 한 곳을 소개해 줄 테니 바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가면 아마 바로 처치해줄 거라고 했다. 의사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병원에 왔고 엑스레이를 찍고 기본 상담을 받는 동안 엄마도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온 것 같다. 이후에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갔고 엄마와 둘이서 소개를 받은 개인병원으로 갔다.
도착한 병원은 개인이 운영하는 정형외과였다. 병원에 도착해 앞서 종합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와 소견서 등을 보여 줬다. 의사는 보더니 흔한 일인지 아무렇지 않게 뼈가 으스러졌지만 그대로 주저앉았으니 그냥 들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다. 수술이랄 것도 없고 간단한 시술 정도밖에 안 될 테니 마취 없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취라는 게 몸에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일단 그걸 떠나서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의사의 말에 내심 큰 수술이면 어쩌나 하는 무섭고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를 믿고 마취 없이 의사 말에 의하면 간단한(?) 시술을 하기로 했다.
간호사들이 다소 분주하게 기본적인 준비를 했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구인 은색 도구들, 그러니까 수술용 칼이나 핀셋 등과 같은 재질의 얇고 조금 긴 막대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왜 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간호사는 내 얼굴 아래에 무언가 담아낼 수 있는 용기를 받쳤다. 붕대를 감고 있는 막대의 용도는 짐작이 가는데 얼굴 아래 용기는 왜 받치는 걸까? 이런 궁금증으로 조금 긴장되는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아무리 간단한 시술이라지만 병원에서 무얼 하는데 긴장이 안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들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지만 코뼈가 으스러져 주저앉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감기로 인해 간단히 주사 한 대 맞는 상황처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준비가 다 됐고 드디어 의사 말에 의하면 간단한 시술이 시작됐다. 의사 말에 의한 ‘간단한 시술’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는 이유는 그 간단한 시술이 시작되는 순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반대의 의미로 확실하게 느꼈다는 것이 문제다. 의사는 정말 간단하게 그 막대를 뼈가 으스러진 코 안으로 밀어 넣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너무나도 간단했다. 하지만 아파도 너무 아팠다. 이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이 시점까지 생각했을 때 아마 가장 아픈 기억이 아닐까 한다. 이게 도대체 어디가 간단한 시술인 건지, 순간 너무 아팠고 속았다는 배신감에 의사를 말 그대로 때려죽이고 싶었다.
본인은 의사니까 뼈의 구조를 알 것이고 그 뼈가 부서졌지만 근육 조직 등에 의해 어딜 가지 않고 내용물 그대로 내려앉은 거라고 이해했고, 들어 올리면 되는 간단한 시술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환자의 고통은 손톱만큼도 고려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여 준 의사를 정말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너무 아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한다는 말이 이 상한다고 깨물지 말라는 것이다. ‘이 인간이 지금 이게 할 소리인가? 그럼 미리 말을 해주고 뭘 물려주던가? 아니면 이렇게 아픈 거라면 마취를 해야지!’ 따지고 싶었지만 내 입에선 너무 아픈 비명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 비명의 비중을 줄이고 따지고 싶은 이야기를 따질 만큼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내 얼굴 아래 받친 용기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얼굴에 있는 7개의 구멍 중에 2개의 귓구멍을 제외한 모든 구멍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액체가 댐에서 방류하듯이 콸콸 쏟아졌다. 눈물, 콧물, 침, 피 할 것 없이 오만 액체가 다 섞여서 주룩주룩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받치지 않았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 내 온몸이 눈물과 콧물, 침과 피가 섞인 이상한 액체로 칠갑이 됐을 것이다. 아픔은 폭풍처럼 몰아 쳤고 피와 침 등은 홍수처럼 넘쳐 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으스러진 뼈를 다 들어 올렸는지 수습하면서 코 전체에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여 마무리했다. 한 달 정도 뼈가 굳을 동안 만지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다. ‘만지라고 해도 안 만져, 이 의사 양반아!’ 세수는 당연히 못 하고 머리 감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두어 번 병원에 내원해서 항생제 등 약도 처방받고 코를 만지거나 풀 수 없으니 코 안에 들어찬 콧물도 빼러 오라고 했다.
내 정신인가, 내 코인가 하면서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린 나는 피곤했는지 바로 잠들었다. 뒤에 엄마에게 들었는데 얼마나 아팠는지 자고 있는 동안에 코를 들어 올린 쪽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고 했다. 그 뒤로 예상대로 근 한 달간 콧물 신나게 빼면서 뼈가 굳기를 기다렸다. 다리나 손이 부러지고 다 낫게 되면 붕대를 푼다고 하는데 위치상 거즈를 떼어내는 행위로 다 나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코뼈는 잘 올라왔고 감쪽같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거의 원래의 코 모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남자아이들 크다 보면 팔이나 다리 하나 부러지는 건 일상다반사라고 하지만 지나고 나니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코가 으스러졌는데 부딪힌 위치가 조금만 위로 올라갔어도 눈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코뼈가 으스러질 정도였는데 눈알이 버틸 수는 없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혹은 조금 옆으로 부딪혔으면 안면이 함몰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만약에 더 아래에 부딪혔다면 앞니 몇 개는 옥수수 모양하고 같은지 확인할 뻔했다. 이쯤 되면 코뼈 정도 으스러진 걸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연출된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다. 단단한 코뼈 으스러지고 말아서!!!(이게 맞는 건가???)
자발적인 정형수술로 성형수술 비슷한 걸 대신한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도 혹여 주변에 지인 중에 성형을 위해 코 수술을 한다고 하면 말린다. 물론 코뼈가 으스러져 가볍게 올리는 간단한 시술과 정상적인 코에 무언가 집어넣거나 변형을 주기 위해 마취를 하고 하는 수술과는 다르겠지만 거북이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여하튼 코 수술이니 아플 것 같아서 말리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