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빵필승

by 이야기하는 늑대

은 개뿔! 선빵필패다! 실수나 실패 등을 다루는 글인데 그중에서도 조금은 창피한 이야기를 하나 해 보려 한다. 사실 다룰 생각이 없었는데 샤워를 하다 문득 생각이 났고 생각이 나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배설하듯이 써 보려 한다.



초등시절부터 덩치가 좋다는 이유로 운동부에 계속 들락 거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운동이 아닌 공부를 하기로 선택해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음에도 그 덩치와 나름 운동을 한 ‘짬바’는 어딜 가지 않아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체육대회 반대표로 축구와 농구선수를 도맡아 출전했다. 운동부로 활동하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기본적으로 반대표 계주 선수를 할 정도였다.



어떤 글에서 의도와 크게 상관없이 글을 쓰다 보니 현재 내 신체 치수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난 지금 키 181cm에 몸무게 83kg 정도의 몸을 가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 크다지만 아직도 아이들 만나면 딱히 밀리는 덩치는 아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군대에 갔을 때도 논산 조교나 헌병을 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고등 시절에는 그런 덩치에 더해서 성적이 떨어지기 전 까지는 나름 상위권에 있었기 때문에 선도부로도 활동했다.



두서없이 덩치가 크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낭만이랄 것도 없는 치기 어린 내용이지만 또 남학생들 사이에선 나름 그때는 의미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밑밥을 깔아 본다. 앞에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누굴 패고 다니면 다녔지 맞고 다니진 않았을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굴 패고 다니진 않았다. 딱히 그런 성정도 아니다. 특별히 누구와 싸워 본 적도 없다.



신경을 안 쓰면 그만인데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고 사람이 있다. 누구나 그런 일이나 사람이 한두 가지 혹은 한두 명 있을 것이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런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그래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덜 창피하니까.) 고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나에게 특별히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닌데 영 보기가 고까운 녀석이 하나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렇다고 그 녀석이 마냥 착하고 그랬던 건 아닌 거 같았다. 뭐라고 해야 될까? 장난을 치는데 조금 선을 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는 걸 보기도 하고 나에게 가끔 그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냥 그래라 하고 넘기면 될 일인데 어린 마음에(참 좋은 핑계고 변명이다. 어리다고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고까운 감정이 앙금이 되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앙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버렸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치워 버려야 할 악 같은 존재로 보였다. 청소시간인가 그랬는데 상황을 보다 ‘선빵필승’이라는 강력한 명제를 믿고 느닷없이 발로 그 녀석의 면상(싸우는데 얼굴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그렇다.)을 후려 깠다. 아니 까려고 했다. 느낌이 오지 않는가? 실패했다. 넘어지고 말았다.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실바닥은 당시에 흔치 않은 돌바닥이었다.(당시 대다수의 학교 교실 바닥은 나무 바닥이었다.) 그 옛날 터미널 대합실 같은 바닥 있지 않은가. 맨들맨들한 돌바닥. 물청소를 해야 하는 돌바닥인데 마침 청소시간이라 바닥에 물이 있었다. 그걸 미처 생각지 못하고 과감하게 다리를 들어 올려 하필이면 사람 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면상을 후려 깔려고 했으니 어쩌면 예상된 상황일 수도 있었다.(배를 냅다 찼어야 하는 건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걸 보니 아직 한참 덜 큰 거 같다.)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처 맞기 전까지는….’ 먼저 치면 그것도 면상을 치면 상대가 정신이 없겠지 하는 그럴싸한 계획으로 과감하게 들이쳤는데 넘어지다니…. 그 이후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냥 밟혔다. 오지게 밟혔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나는 덜 다치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리는 거 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의 그 쪽팔림이란 들어갈 수 있는 쥐구멍이 있다면 아니 없다면 파서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넘어지고 처음에 미처 막지 못했을 때 차였는지 훈장처럼 눈 밑이 조금 찢어졌다. 천만다행이다. 눈을 제대로 안 맞았으니. 시간이 많이 지나 눈 밑에 흉터는 거의 보이질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 남학생들 한 두 번 치고 박으면서 큰 다지만 당사자에겐 상당히 뼈아픈 경험이 되기도 한다. 다행이라면 그 친구와 졸업 이후에 길가다 우연히 만나 맥주 한 잔 하면서 화해는 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얼굴 윤곽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친구는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를 밟았던 놈인데 잘 살고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