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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r 14. 2023

카페에서 글쓰기

 일을 하는 도중에 시간이 떠서 카페에 왔다. 뜨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써 볼 요량으로 카페에 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연히 시간이 나서 카페에 들러 글을 쓰는 것처럼 보여질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다. 카페에서 글쓰기를... 카페에서 글 쓰는 게 뭐 대수라고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 왔을까? 우선 한 가지 오늘 일 하는 도중에 시간이 뜬 건 우연히 뜬 게 맞다. 다만 일 특성상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시간에 상대방이 부득이한 일이 생겼다고 미리 연락을 해서 글쓰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준비를 한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묘한 상황을 전달하고 싶어 사족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시간을 조금 뒤로 많이 돌려 보면 어렸을 때 집이 아닌 곳에서 공부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가끔 바람이 불어 친구들과 도서관에 모여 공부를 한 적이 있었지만 공부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경우였다. 당시 중앙도서관 지하 매점에 파는 쫄면과 우동 등이 맛있었다.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공부하자고 약속을 하고 모여 열람실 등에 자리를 잡고 바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철근도 씹어 먹을 나이라 우선 배부터 채워야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걸 반드시 증명이라도 해야 되는 사명인 것처럼 시시덕거리며 바로 매점으로 내려가곤 했다. 그 순간 그날 공부는 끝이다. 우동이나 쫄면 등을 신나게 먹고 에이스에 뚱바를 사서 밖에 나가 바람을 쐬며 들고 온 워크맨으로 신승훈이나 김건모의 노래를 들으며 떠들다 집에 오는 게 일이었다. 도에서 운영하는 중앙도서관이라 매점 가격도 저렴해 학생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무료인 도서관에 가서도 저 모양인데 돈을 내는 독서실 등은 갈 일이 없었다. 당시에 스터디카페는 아예 없었고 다방에서 카페, 그러니까 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한 커피전문점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기에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카페에 갈 일은 없었다. 애초에 불특정 한 사람들이 다수인 공간에서 무언가 집중해 할 수 있는 성향이 아니다. 좋게 말해서 호기심이 많은 건데, 여기저기 영 신경이 쓰여 뭘 할 수가 없다. 더불어 공부건 뭐건 간에 집이라는 공간에서 하면 될 일이지 굳이 돈을 들여 공간을 사야 되나 하는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나와는 뭔가 맞지 않았다.



 그런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로망까지는 아니지만 카페에서 글을 한 번 써 볼까 하는 바람 혹은 기대를 하게 됐다. 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뭐랄까 조금 있어 보이지 않나? 글, 생각, 공간, 타자소리, 음악 그리고 커피. 뭔가 상당히 조화롭지 않은가? 더해서 카페라는 공간에서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백색소음으로 나름 기분 좋게 귀에 꽂히는 느낌은 글을 쓰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나름 괜찮다. 내가 쓰는 글이라고 해 봐야 내 이야기 그러니까 별 볼일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답지 않은 오만 이야기들이 결국 내가 쓰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억지에 가까운 연결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라고, 앞에서 이야기한 성향 등으로 인해 계속 미뤄 왔다. 일단 글을 쓰기 위한 목적만을 위해 카페에 가는 것부터 영 귀찮았다. 가보고 싶은 것과 실천에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일을 하기 위해 나가는 길에 조금 일찍 나가거나 일을 마치고 나서 카페에 들러 글을 쓰면 그나마 귀차니즘이라는 족쇄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그 마저도 결국엔 실천에 옮기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그리고 여하튼 다른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을 사는 거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부분도 역시 앞에 설명한 성향으로 굳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집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물론 돈이 들지 않는 공간인 도서관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도서관에서 한 번 글을 써 본 적이 있다. 한 번. 그런데 도서관의 분위기와 카페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지금 원하는 건 어쩌면 글을 쓰는 본질적인 목적보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홀짝이면서 타자를 두드리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 도서관에서의 건조한 경험은 내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내가 해 온 준비라는 건 바로 이런 마음의 준비였다. 성향, 게으름, 귀차니즘 그리고 비용적인 측면 등에 대한 마음의 정리. 더 나아가 시점도 맞아떨어져야 했다. 즉, 귀찮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우연한 상황.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도, 끝나고 나서도 아닌 중간에 우연히 시간이 뜬 오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거 같은 오늘조차 일을 하기 위해 제시간에 나오면서도 노트북을 챙기면서 ‘아, 귀찮아.’가 마음속에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그 마음을 욱여넣듯이 노트북을 가방에 꾸역꾸역 욱여넣으며 비로소 지금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자리도 좋다. 창가에 앉아 밖을 마주하고 노트북에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 ㅋㅋㅋㅋㅋㅋㅋ 밖에서 보면 카페의 창가에 보이는 흔한 풍경이지만 이질감 없이 괜찮아 보이겠지?!



 하지만 오늘로 끝. 한 번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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