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로팟, 드디어!

by 이야기하는 늑대

2023년 6월 8일



6월 4일에 펠렛에 씨앗을 올렸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시간은 잘도 흘러 흘러 만 3일이 됐다. 그간 매일 펠렛을 확인했다. 보다 정확히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확인했다. 더 더 정확히는 물을 주기 위한 나만의 텀인 3~5시간 간격으로 물을 주면서 계속 확인했다. 정지화면인가 했다. 솟아오른 3개의 봉우리인 펠렛의 꼭대기 분지는 침묵의 분지였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건가 싶었다. 다른 식집사 분들의 글을 보니 정말 빠르면 하루 이틀 새에 나오기도 하는 거 같은데 만 3일인데 소식이 없으니 약간 초초했다. 머릿속 생각은 빛보다 빨라 벌써 만약에 싹이 나오지 않는다면 종자를 파는 곳에 가서 다시 사 와야 되나? 사 오는 길에 종자 파는 가게의 사장님에게 이거 저거 물어보면 다시 실패하진 않겠지? 아니면 거, 발아하기 힘든 종을 초보라면서 그러고 있냐고 싹 올라온 거 사가라는 핀잔을 듣는 건 아닐까? 오만 생각을 했다. 순간, 아! 이거 이런 게 식집사의 마음이려나 싶었다.



초초해하는 식집사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시간은 흘러 만 4일이 지났다. 일어나자마자 물도 줄 겸 오늘도 변화 없는 침묵의 분지를 확인 하러 가 볼까 하는 마음으로 별님이 살고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어! 정말 작은 점 같은 어쩌면 뭐가 묻은 거 같은 펠렛의 색과는 다른 무언가가 3개의 펠렛 중 하나에 보였다. 키트에 동봉된 돋보기를 들었다. 돋보기로 봐도 명확하게 구분이 되진 않았다.



긴가민가했지만 명백한 건 만 3일 간 전혀 본 적이 없는 점이었고 색이었다. 맞을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하고 싶었다. 왜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은가. 맞긴 맞는 거 같은데 거의 99% 확실한데 세상일 모른다고 1%의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조금 더 확인해 보자는 마음. 보통은 간절할 때 그런 마음이 이는 거 같다. 맞을 거야. 아니, 조금 더 확인을 해야 될 거야를 무한히 반복하면서 더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니...



다음 날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다만 저 점은 분명히 무언가 변화가 생긴 점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들었다. 부족한 나머지 1%의 확신을 채우는 하루가 더 지난 6월 10일 드디어 침묵의 분지와 조금은 다른 색이었던 별 의미 없어 보였던 점은 펠렛을 뚫고 올라온 새싹이 되었다. 다른 식집사 분들의 아주 예쁜 잎을 보여 준 새싹은 아니었고 허리가 굽은 노인 같은 싹이었지만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하나의 펠렛도 역시 이전에 없던 점을 보였다. 이번엔 확인할 것도 없었다. 맞았다. 이 펠렛도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분명히 올라올 것이다. 남은 하나의 펠렛이 소식이 더뎠다. 3개의 펠렛 중 유일하게 물에 불린 순간부터 약간 골이 패인 펠렛으로 그 골에 씨앗을 넣기 좋다고 넣었는데 그 골이 다소 깊었던 거 같다. 다른 두 개의 펠렛은 모종삽으로 살살 파서 씨앗을 올리고 하는 과정이 조금 불안했는데 오히려 먼저 나왔다.



하지만 세상 일 모른다고 다음 날 먼저 싹을 내 보낸 두 개의 펠렛의 굽은 싹과는 다르게 더뎠던 변화가 없어 보였던 골이 깊어 좋다고 씨앗을 넣었던 펠렛에서 그야말로 예쁜 잎 두 장을 펼쳐 준 싹이 곧게 불쑥 나와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부러웠던 다른 식집사 분들의 글에서 본 사진 그대로의 싹이 빼꼼 나와 있었다. 반전의 반전이었다.



수분 유지를 위해 펠렛을 덮어 두었던 비닐은 필요 없어졌다. 싹이 나오면 그렇게 하라는 다른 분의 조언이 기억났다. 비닐을 치우는 느낌이 답답해 보이는 장막帳幕을 치우는 거 같았다. 속이 시원했다. 연하디 연한 초록색 잎 두 장, 다소 굽은 듯 하지만 분명히 펠렛을 뚫고 올라온 녀석들. 모두가 기특했고 귀여웠다. 아직 씨앗 껍질이 잎에 그대로 들러붙어 있는 녀석도 있어 살살 떼 주었다.



발아發芽는 씨앗에서 싹이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칙칙했던 펠렛의 색과 다른 확신은 없었지만 여하튼 다른 점 하나를 보여 준 날이 6월 8일. 그야말로 누가 봐도 새싹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로 펠렛을 뚫고 올라온 게 6월 10일. 씨앗을 펠렛에 거의 올려 두는 수준으로 정리하고 흙이랄 것도 없는 걸 살살 덮었지만 펠렛 속에 있던 씨앗이 최초라는 관점에서 조짐을 보인 건 아마도 6월 8일 전일 것이다.



어쩌면 6월 4일, 씨앗을 처음 심은 그날부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생명은 이렇게 신기한 거 같다. 깨 반만도 못한 씨앗에서 꽃을 본 것도 아니고 아직 작은 잎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신기하다. 인간은 더 신기하다. 임파첸스의 씨앗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남자 몸에서 나온 정자, 여자 몸 안에 있는 난자는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을 만큼 작다. 그런데 그 둘이 만나 팔다리가 있는 생각하는 포유류가 된다. 과학시간에 배웠고 삶을 살아오면서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봐 왔던 일이지만 그 신기함이 어딜 가지는 않는다.



식물로 그런 신기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이다. 루틴이랄 것도 없지만 지속적으로 베란다로 향하는 내 마음과 발걸음이 생명의 신기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의지는 날로 커져 가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점점 나도 모르게 식집사의 길로 빠져 드는 건 아닌가, 뭔가 큰일을 벌이는 건 아닌가 하는 미지에 대한 아주 약간의 두려움도 마음 한 켠에 솟아났다. 그런데 괜찮다. 두려움은 뒤집어 생각하면 설렘과 바람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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