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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겪으면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아주 이상하면서 괜찮은 걸 배웠다. 아니 강요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다면 ‘사회社會’의 뜻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화된 집단이나 세계. 그 주요 형태는 가족, 마을, 조합, 계급, 정당, 회사, 국가 등이다.(다음 사전 참조)’ 간단히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 혹은 세계 자체라고 한다. 단어를 이루고 있는 한자만 봐도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단어다.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사社와 회會로 이루어진 한자어다. 뜻을 알아보면 볼수록 안 모이면 큰일 날 것 같은 단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다면 왜 모여 살아야 했을까? 그야 당연히 혼자일 때 보다 위험이 덜 하고 생존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우리 인간의 시초인 지금으로 보면 인간이라고 하기엔 아직 애매한 동물들은 기술은 말할 수준도 안 되고 말도 어물었을 것이고 체력적인 면도 여타 동물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해 모여 살지 않으면 죽기 딱 좋았을 것이다. 굶어 죽거나 다른 동물에게 잡아 먹혀 죽거나... 그나마 그 부족함이 동력이 돼 다른 동물들보다 모여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절실해 종이 멸하지 않고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모여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그때에 비하면 천지가 개벽한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고 언어 발달에 따른 소통도 원활해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기 좋은 쪽을 넘어 아예 키우거나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그 결과로 인간은 지구의 지배 종, 만물의 영장이라는 아주 오만한 타이틀을 저들 스스로 만들어 냈다. 이쯤 되면 적당히 떨어져 살아도 인간이 아닌 그 어떤 종에게도 위협받지 않을 텐데 아직도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산다.
그 옛날 돌이나 깨서 겨우 입에 풀칠하던 동물이나 다름없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 시대는 그때에 비하면 재화가 넘쳐난다. 그런 상황에 모여 살다 보니 이 인간이란 종자가 욕구와 욕심을 숨길 수 없어 이미 풍족한데도 불구하고 자꾸 다른 인간의 것을 탐하게 됐다.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주어진 부분에 만족하면 그럴 일이 없는데 남의 것을 탐하다 보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어 얼마 전까지 전 세계가 치열하게 서로를 못 죽여 안달이 난 큰 전쟁을 두 번이나 치렀고 국소적인 지역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적당한 거리다. 그만 좀 들러붙어 아옹다옹 싸우지 말고 조금 떨어져 살아야 한다.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모순적이면서 적절한 단어다. 사회적 거리두기. 우리 시 중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지금 인간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단어다.
내 삶의 일부는 외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관계라는 측면에서 누군가에게 자꾸 매이려는 나를 다른 곳이 아닌 나의 중심으로 자꾸 잡아끌어 온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관계라는 주제의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단 댓글이 있다. 오글거리지만 지금 글 내용에 적절할 듯하여 옮겨 본다.
“아니 애초에 관계에 목을 매지 마세요.
자존감을 바탕으로 혼자 서세요.
혼자 살아가라는 게 아니라 외로움을 받아들이세요.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운 존재입니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니
관계에 목을 매고 관계에 엮이고 고통스러워하는 겁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자존감을 확인할 때,
비로소 그 누구와도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
이런 이야기도 좋아한다. 삼국지의 조조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다. ‘세상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세상을 버리겠다.’ 다소 중2병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는데 이해한 바는 이렇다. 자꾸 되지도 않게 세상에 조직에 끼려 애쓰지 말자. 혼자면 어떤가? 그냥 그렇게 혼자 살면 되지. 그리고 정말 혼자인가? 가족이 있지 않은가? 가족이 없다면 머리에 일 하늘과 발 디딜 땅이 있으면 그만 아닌가? 외롭다. 외로운데... 묻고 싶다. 누군가와 늘 함께 한다고 외로움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는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또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럴 바에 차라리 그냥 혼자 살겠다.
자! 이제 드디어 키우고 있는 식물인 임파첸스, 이름은 별님에 대한 이야기다. 펠렛에서 화분으로 옮긴 이후에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발소리가 너무 잦으면 식물도 피곤할 것이다. 모든 건 적절해야 할 것이다. 적당히 화분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림의 여유를 바탕으로 부족하지 않게 물만 살살 주면서 거리를 두려 한다. 영양제도 분갈이한 지 일주일 정도가 되는 다음 주 초 정도에 주려 하는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예정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런 다짐을 한 오늘, 저녁을 먹으러 가족과 함께 밖에 나가 더운 날에 걸맞게 삼계탕을 먹고 후식을 즐기기 위해 카페까지 다녀왔다. 물론 나가기 전에 물을 살살 뿌려 주고 나갔다. 나가면서 가장 작은 화분의 싹이 제법 자라 조금 큰 화분을 다시 준비해야 하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면서 나갔다 왔다. 그런데 웬걸 나갔다 와서 평소와 같이 확인을 하러 갔더니 제법 자란 그 싹이 나가기 전의 모습과 다르게 다소 시들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헐... 펠렛에서 화분까지 다소 성장의 속도가 느리면 느렸지 시든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데 왜 하필 오늘 시든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열렬히 떠든 주인에 대한 반감인가, 날이 더웠음인가? 전자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찔림을 후자였으면 하는 기대로 돌려세우며 물을 뿌려줬다.
괜찮은 거지요? 별님! 그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게 그게 그... 그런 게 아닌데... 그... 아... 이거 말이 통하질 않으니 설명도 안 되고 별님은 눈이 없으니 글을 써 줘 도 보질 못 할 텐데 어떻게 설명하나... 그저 물이나 많이 주고 상황을 봐서 영양제를 줄 수밖에. 그 내 마음이 그게 아니에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