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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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걸 써 보겠다고 꼴값을 떤 지 어언 5년이 돼 가고 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작했고 지금까지 써 오고 있다. 에세이를 쓰는 건지 수필을 쓰는 건지 그저 일기를 쓰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잘 안 가는 글을 써 왔다. 살아오면서 해 온 일들을 바탕으로 부족하지만 나름 그 분야의 전문적인 글도 썼다. 이 모든 걸 두루뭉술하게 후려쳐 결론을 지어 보니 난 그저 적극적인 일기를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글이라는 걸 쓴다는 거 자체가 의미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지금까지 버텨 온 거 같다.
해서 글을 그만 쓸까 하는 고민을 최근에 많이 했다. 소위 이거 뭐 감동도 없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글을 계속 써야 할까 하는 그런 고민이었다. 하지만 관성이란 게 무서워서 떠밀리듯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는 그만 써야 되나 하는 포기라는 단어를 동시에 계속 떠올리고 있다. 실패는 아니다. 실패라는 건 가열 차게 붙어 보고 산산이 부서지는 건데 난 가열 차게 붙어 본 적이 없다. 해서 의미 있는 행위에 대한 수준 높은 결과라는 의미의 실패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게 단점인지 장점인지 때론 헷갈리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으로 때려치우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다. 한없이 늘어지던 소싯적의 우유부단함이 싫어 끊어 내는 연습을 해서 겨우 지금에 이르렀는데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라고 근본적인 흐느적거림은 웃기지도 않게 이렇게 한 편으론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동인으로 발현되기도 하는 거 같다.
뭐 여하튼 그래서 이번에 나름 생각한 게 이왕 떠밀리듯 글을 쓰건 끊어 내지도 못하고 흐느적거리듯 글을 쓰건 간에 조금이나마 늘 떠들고 다니는 표현대로 적극적인 일기를 본격적으로 써 보기로 했다. 대단할 건 없고 제목 그대로 오늘을 쓰려고 한다.
이 제목을 짓는대도 나름 한참 고민을 했다. ‘오늘도 쓴다.’라고 하려 했다가 그럼 어제도 쓰고 오늘도 쓴다는 의미로 매일 써야 하는 부담이 주어질 거 같아 ‘오늘을 쓴다.’로 고쳤다. 그렇다고 ‘오늘만 쓴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야말로 절필絶筆을 알리는 마지막 글일 테니, 그건 나중에... 해서 ‘오늘을 쓴다.’로 가닥을 잡고 뒤에 붙이는 숫자도 처음엔 우리 한글을 쓰려고 했다. 너무 앞선 걱정이긴 하지만 나중에 ‘오늘을 쓴다. 여든 이레’ 이러면 이거 또 뭔가 제목이 너무 긴 느낌이 들어 재고했다.
그럼 영어를 빌려 ‘오늘을 쓴다. D(Day)-1’ 이렇게 해 볼까도 싶었는데 뭔가 개똥폼 잡는 거 같아 싫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날짜를 붙이기로 했다. 그 날짜 역시 2025로 시작하지 않고 25로 시작했는데 어차피 남은 생, 년도의 백 단위가 바뀌는 건 볼 수 없을 거 같아 천 단위와 함께 생략하기로 했다. 더불어 당일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관통하는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면 부제副題로 삼기로 했다. 이번 글의 부제는 뭐 여하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