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일기

23.05.01 / 공황장애 진단을 받다.

by 정윤

며칠 전부터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무거운 무언가로 명칭을 짓누르는 듯한 흉통과 큰 심호흡 없이는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호흡곤란이 함께 찾아왔다.

겪어본 적 없는 낯선 증상이에 나는 익숙한 동네 내과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찾아 간 병원에는 환절기답게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날이 주말이 끝난 월요일인 것도 긴 대기열에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익숙하게 이름 석 자를 말하고 접수를 마친 뒤 대기했다. 익숙한 대기실을 걸쳐 익숙한 진료실에 들어가 익숙한 내과 의사 선생님이 내게 내린 진단은 알레르기성 질환이었다.

알레르기성 증상으로 추정되며 약을 쓰면서 조절하고 호흡곤란 증상이 있으니 알레르기성 천식이 의심되니 호흡이 더 나빠지면 지체 없이 빠르게 다시 내원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나는 그렇게 4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내 호흡곤란은 병원을 방문했던 월요일에서 고작 3일 지난 수요일 극도로 심해졌다. 일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 빠르게 다시 내원한 병원에서는 여전히 폐소리에는 아직 큰 이상이없으니 약을 조금 더 조절해서 상태를 지켜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새로 바뀐 약으로 4일을 버텼다.

하지만 여전히 내 호흡은 불안전했고 숨을 쉰다는 당연한 생존의 명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함이 쌓여간 나는 동네 병원에서 조금 더 큰 대형병원을 찾아갔다. 200여 명대의 접수 대기번호를 받아든 대형병원의 대기는 정말 길고 길었다. 간단한 호흡기 검사와 X-ray 촬영을 찍고 다시 만나자고 짧게 말씀하신 대형병원의 내과 의사 선생님을 다시 보기까진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받은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나는 여전히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데 의사선생님은 폐 기능은 매우 정상적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시면서 말씀하셨다.

"폐 이상은 없네요. 혹시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

의사 선생님이 지나가듯 짧게 건넨 그 한마디가 1시간이 넘는 내 진료시간 중 유일한 소득이자 가장 큰 소득이 됐다. 나는 깨끗한 폐 소견으로 인해 복용 약조차 없이 비싼 기본검사 영수증만을 든 채 대형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 길로 곧바로 정신병원을 향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과적 소견으로 폐 X-ray까지 찍었는데 아무런 이상 소견이 없다면 남은 건 정신적 요인뿐이다. 나는 어떻게든, 단 일분이라도 빨리 이 답답한 호흡곤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운 대형병원을 빠져나오며 나는 일전에 알아뒀던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아봤다. 정신병원을 알아뒀던 것은 최근에 했던 행동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정신병원의 점심시간 전에 아슬아슬하게 진료를 볼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정신병원을 알아뒀던 이유는 최근 점점 물에 잠긴 듯 깊어져가는 기분의 어두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길에도 나는 이 선택이 맞는지 의심이 됐다. 최근까지 우울했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 당장 나는 신체적인 고통이 가장 큰데 정신병원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다.

확신 없는 의문을 품고 찾아간 정신병원은 생각보다 많은 대기 줄이 이어져있었다.

마치 긴 주말을 보낸 월요일 내과와도 같은 아니 그보다 긴 대기 줄이었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좁은 대기실에 모여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타인에게 불편한 소음을 내지도 않았고 대기실을 채우는 건 대기실 벽에 걸린 TV에서 나오는 다정한 공익광고 멘트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낯선 공간 속에 들어갔다.

"처음 왔는데요."

내 짧은 말에 간호사 선생님은 종이 한 장을 꺼내셔서 이곳저곳 체크를 하시고 체크한 곳을 채워달라는 말과 함께 종이를 건네셨다. 채워나가야 할 사항들은 내과들과 똑같았다. 이름,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 주소 등 짧은 종이를 채우고 건네자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씀이 들려왔다.

짧은 대기 시간이 지나고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역시 일반 내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선 진료 공간이었지만 낯선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잘 다듬어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머쓱하게 자리에 앉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정신과 진료가 처음이시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는 나에 대답에 의사 선생님은 그럼 의례적인 질문을 하겠다며 복용 중인 약이 있는지 등 간단한 질문들을 하셨다. 의례적인 질의응답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어떤 불편 때문에 오셨나요?"

나는 그동안 느꼈던 나의 호흡곤란에 대해 토로했다.

앞서 내과에서 들었던 깨끗한 폐 소견도 함께 덧붙였다. 이걸 덧붙이면서 오히려 더 간절해졌던것 같다. 여기가 아니면 나는 이제 어디에서도 내 이 답답한 호흡곤란을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더 절실히 증상에 대해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평소에 나의 내면 아래에 잠겨있던 우울의 불안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드렸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내면의 이야기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딱히 의사 선생님이 그에 대한 질문을 건넨 것도, 무언가 이끌어당기는 공감의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말할 곳이 필요했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걸 쏟아부어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담담히 나의 모든 이야기를 타이핑하셨다. 사실 그 모든 이야기를 담으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화면이 보이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언젠가 찾아 본 정신 병원 후기에 의사 선생님이 공감 없이 타이핑만 치시는 모습에 상처받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담담히 진료실을 울려펴지는 타이핑 소리가 나의 우울에 대한 공명 같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우울에 대한 공명은 곧이어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진실을 알려줬다.

"공황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내가 찾아 헤맨 진실을 천천히 읊어주셨다.

"아마 어느 정도 찾아보시고 예상하셨겠지만, 공황이 맞으시고요."

하지만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병원을 미리 찾아봤을 정도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공황이 이렇게 신체적인 고통을 가져오는 병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 짧은 식견은 정신과적인 병은 기분과 관련된 병들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당장 숨이 멎을 것 같고 숨을 내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이런 신체적인 고통이 공황 즉, 정신병일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내 스스로 정신병원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어도 예상치 못 한 충격이었다.

예상치 못 한 병명에 어벙해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짧은 질문지였다. 공황 증상에 대해 적혀있고 해당 증상에 대한 강도를 0에서부터 3까지의 단계로 나누어 그렇게 느끼지 않음과 매우 강렬하게 그렇게 느낌 정도로 표시되어 대답하는 질문지였다. 나는 천천히 질문지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질문지에 적혀있는 질문들이 다 최근 내가 겪었던 신체적인 통증들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과에서 찾지 못했던 정답을 질문지를 통해 하나씩 찾아갔다. 그리고 나의 대답들은 대부분 매우 강렬하게 그렇게 느낌이었다. 대다수의 고통의 강도를 묻는 질문에 나는 강한 고통을 느낀다고 답했고 나의 질문지를 받아 든 선생님은 짧은 곡소리를 내셨다.

"아이고... 심하시네요."

어쩌면 무심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내게는 그 짧은 말이 명쾌한 정답 같았다.

나는 심한 공황 장애였다.

내가 며칠을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찾아헤맸던 정답은 다른 곳이 아닌 정신병원에 있었고, 그 정답지는 공황장애였다.

예상치 못 한 낯선 답이었지만 그동안 그토록 찾아 헤맨 정답은 찾아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조금속 시원했던 것 같다. 아니 많이 속 시원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고통에 혹시나 숨이 멎을까 이대로 폐에 이상이 생겨 호흡곤란으로 119에 신고조차 못 해보고 쓰러져 비명횡사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됐으니깐 말이다.

하나의 궁금증이 풀리자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선생님 그럼 저는 지금 공황장애만 있는 건가요? 우울증이나 다른 병은 없나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처음으로 어려운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지금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원래 우울증이 있으셨는데 공황이 생기셨을 수 있고, 공황이 우울증을 2차적으로 불렀을 수 있습니다. 그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새삼 나의 공황 증세가 심각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의사 선생님께 약을 처방받고 일주일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 건넨 감사합니다는 정말 진심이었다.

그리고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의 인사는 훨씬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진료실을 나가 대기실에서 잠깐의 대기가 끝난 뒤 약을 받으며 갑작스러운 진단에 까먹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뒤늦게 간호사 선생님께 건넸다.

"선생님, 이 약을 먹으면 증상이 좀 호전될까요?"

간호사 선생님은 눈썹을 팔자로 그리시면서 친절히 웃으며 대답해 주셨다.

"네 많이 좋아지실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은 아실까. 그 한마디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찾아헤맸던 단비 같은 말이었는지.

나는 꼭 좋아지고 싶다.

갑작스러운 진단이었기에 나는 집에 돌아와 열심히 공황 장애에 대해 찾아 나섰다.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등 어려운 말들이 잔뜩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아들은 게 있었다. 여러 의사 선생님들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한 내용이었다.

공황의 완치는 공황 발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공황 발작이 일어나도 발작에 패닉을 일으키지 않고 담담히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 대처해나가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어나는 과호흡과 같은 증상들을 평생을 살면서 다시 만나지 않을 리 없으니 그 증상에 패닉을 느끼지 않고 잘 넘기는 법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인지행동치료 중 일환으로 일기를 쓰듯이 증상들을 기록하는 것도 좋다고 하셨다. 이런 이런 발작이 일어났는데 몇 분 만에 증상이 완화됐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간단하게 공황 일기를 써볼 계획이다.

어떤 내용들이 담기게 될지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낯설고 어려운 말들이 많고 아직까진 내가 진짜 공황 장애를 판정받았다는 사실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계속 이야기를 남기려고 한다.

좋아지고 싶으니깐.

나는 살고 싶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