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atsall Mar 30. 2023

내가 자동화에 동화되는 동안

사무실 안에 회사의 현황을 띄워라

 회사에서 숫자는 계기판 역할을 합니다.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 속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그래서 대부분 회사에서 이런 것들을 잘 요약한 대시보드를 만들어놓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 놓는데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면서조차도 계기판을 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지, 1페이지 요약 대시보드를 만들고 사무실 곳곳에 큰 화면으로 보여줘라 라는 오더가 내려왔습니다.


 '매일 지표를 분석하는 일'은 루틴 하지 않지만, '매일 지표를 보여주는 일'은 루틴 합니다. 그 일에 하루 5분이라도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저는 이런저런 자동화 시도를 해보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요. 이 글에선 'Quicksight 대시보드를 인터넷 TV 3대에 동시 노출시키는 일'에 대한 기술적 시도들과 그러한 시도를 하면서 느낀 감상을 적어보겠습니다. 제가 어떤 허튼짓을 했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분들은 맨 마지막 문단으로 바로 내리셔도 됩니다.



Amazon Quicksight Dashboard to Smart TV


 저희 회사는 BI로 Quicksight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여차저차 퀵사이트로 1페이지 대시보드를 만들었습니다. DW기반으로 만들었기에 하루 한번 업데이트되고, 해야 하는 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정지된 웹 페이지를

- 하루 한번 새로고침 시키고, 로그인은 풀리지 않아야 하며

- 그것을 스마트 TV 3대에 동시 노출시킨다


1. 미러링 (실패)

 제일 간단한 방법입니다. 여분의 노트북으로 퀵사이트에 접속해 놓고, 그 화면을 TV와 무선공유 하는 것입니다. 다만 노트북 위치와 TV의 위치가 멀어지면 연결이 끊어질 수 있고, 또 미러링은 1:1을 기본으로 하기에 애당초 포기했던 방법입니다.


2. 스마트 TV 자체 브라우저로 퀵사이트 접속 (실패)

 스마트 TV는 OTT어플에 접속하는 것 외에도, 그냥 인터넷 창을 띄울 수도 있습니다. 크롬이나 엣지는 아니지만, 스마트 TV 전용 웹 브라우저가 저마다 설치되어 있는데요. 인터넷 TV 3대 각각 퀵사이트에 직접 접속해서 화면을 띄우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만.... 퀵사이트 로그인 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마 해당 웹페이지에서 필요로 하는 특정 기능들을 스마트 TV의 브라우저가 지원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실패!


3. 퀵사이트 APK를 스마트 TV에 설치 (실패)

 퀵사이트는 앱이 있습니다. 웹으로 접속이 안되면 앱을 설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APK파일을 설치하는 경로를 TV 제조사에서 막아놨습니다. 블로그에 성공시킨 사람들도 있긴 하던데, 제조사와 모델에 따라 가능여부가 달라지는 듯했습니다.


4. 스트리밍 (성공)

 모든 스마트 TV는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착안하여, 여분의 노트북으로 대시보드 화면을 띄워놓는 유튜브 라이브를 켜놓고 스마트 TV로 이 방송을 시청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방송이 꺼지지 않는 이상 TV 3대로 동일한 화면을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고정된 화면이기에 버퍼링이 발생해도 상관없습니다. 유튜브 라이브는 보안설정도 가능하고, 방송에 시청자가 3명으로 유지되는 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로컬네트워크를 벗어난다는 점이 껄끄럽긴 하지만 이게 최선인 듯합니다.



너도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구나



꼭.. 그래야만 했냐!!!


 자동화에 꽂혀서 여러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느낌이 듭니다. 달리 말하면, 목적보다 수단이 더 중요 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본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주요 지표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목적만 달성하게 된다면 방법은 꼭 사무실 내 스마트 TV에 화면을 노출하는 게 아니어도 됐겠지요. 역으로, 사무실에 대시보드를 띄워놓는다고 사람들이 지표를 주의 깊게 볼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자동화를 구현하는 과정은 재미있습니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오로지 방법에 대해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죠. 참고할만한 자료도 많고, 결과가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하지만 그 몰입감 때문에 쉽게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쉬운 문제를 어렵게 풀려고 하는 상황, 간단한 목적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걸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멈춰도 될 것 같습니다.


 결국 대시보드는 슬랙 채널에 매일 업데이트해 주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습니다. 구글 앱스스크립트로 구현하긴 했는데, Zapier와 같은 자동화 지원툴로도 가능하긴 합니다. 추가적인 기기의 구매도, 와이파이 트래픽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서비스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여주자"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일론머스크가 말한 엔지니어링의 다섯 단계가 떠올랐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정의한 엔지니어링의 5단계
1. 설계가 맞는 것인지 검증한다.
2. 필요 없는 부품이나 프로세스를 제거한다.
3. 설계를 단순화, 최적화한다.
4. 생산 속도를 높인다.
5. 자동화한다.

 일론머스크는 테슬라의 모델 3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의 적용 순서를 거꾸로 해서 굉장히 큰 비효율을 낳았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일의 방향성 검증은 나중에 하고, 일의 속도만을 빠르게 해서 큰 실패를 겪었다고 하죠. 


 저 위의 다섯 단계는 기계의 공정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업무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에게 내려진 업무가 과연 올바른 의사결정이었을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 일지부터 생각해야 자동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네요. 엑셀, 구글 스프레드시트, SQL 등 사무직을 위한 사무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이들을 잘 다루어야 나의 업무 생산성이 늘어날 것만 같습니다. 광고에서도 '칼퇴를 부르는 업무 자동화 기술!'이라는 카피를 종종 볼 수 있죠.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업무 자동화 기술이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알려주기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정말로 칼퇴를 부르고, 나의 업무 생산성을 높여주는 제일 효과 좋은 방법은 일의 방향성을 잘 설계하는 것일 테고, 이건 소위 일머리가 필요한 영역이기에 공통적인 내용을 코칭해 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을 해보는게 그나마 괜찮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나는 엑셀을 잘하는가, 일을 잘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