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스프레드시트 서드파티 사용기
이전 나의 상사였던, 회계사이면서 개발과 자동화에 굉장히 관심 있었던 CFO께서 하신 말씀이다.
엑셀과 같은 사무용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은 사무직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기본 소양이 되었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업무를 하는 데에도 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 기술에 아무리 통달한다 한들, 그게 나의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능숙해봤자 기본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료들 중 그 기본소양을 갖추지 못한 몇몇들에게 '엑셀 잘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내 업무시간을 그들에게 할애하게 되고, 더 많은 업무들을 부담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엑셀'이나 잘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많은 노고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고 SQL이나 VBA를 배운다 하더라도 당장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신이 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결과는 같다. 회사생활 만 7년 가까이하면서 엑셀을 굉장히 잘 해왔고, 비개발자임에도 SQL 할 줄 아는 것을 나의 장기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자료 뽑는 기계가 되었다. (난 개발팀이나 데이터분석팀이 아니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효율적이고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업무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게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절차를 간편화하고 자동화하는 것보다는
단축키를 익히고, 손을 빠르게 움직이는 쪽으로 본인의 생산성을 높여간다.
비개발자 사무직이 원하는 자동화의 수준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양식이 짜인 데이터를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전송하는 식이다. 이러한 반복적 업무들을 너무나도 쉽게 자동화한 경험을 적어본다.
1. 처음엔 어렵게 접근한다.
운영 대시보드를 매일 업데이트한다고 치자. 정형화된 raw data를 특정 시트에 매일 덮어쓰기 해야 한다.
이때 가장 귀찮은 것은 데이터를 다운로드해서,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붙여 넣기 하는 작업이다.
이것을 자동화하기 위해서 DB와 구글 스프레드시트가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 연결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구글 스프레드시트 DB 연동]이라고 구글에 검색해보자.
구글에서 친절하게도 이 방법을 매뉴얼화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한글로 설명된 개발자의 블로그도 상단에 노출된다.
아 보고 따라 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하다 보면 구글 앱스 스크립트라는걸 만지게 된다. 장황하게 나와있는 코드를 긁어서 붙여넣기 하면 된다고 하는데, 잘 안된다. 구글 앱스 스크립트는 개발 언어 자바스크립트를 알아야 다룰 수 있는 기능이고, 비개발자는 점점 벽을 느끼게 된다.
2.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생각보다 제법 많이 있다.
왠지 나 같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 제법 있을 것 같고, 개발자들은 이런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문제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개발자 흉내를 내는 방식이 아닌, 하고자 하는 작업을 도와줄 소프트웨어가 있는지 찾아보는 식으로 접근을 해보자. 다만 이제부터는 시야를 조금 넓혀서, 영어로 검색을 해야 한다.
서드 파티 (Third Party)의 사전적 의미 같은 건 모르겠고, 그저 메인 서비스에 파생하는 서비스 정도로만 이해하자. 검색을 조금 달리 해보니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붙어서 각종 작업들을 도와주는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친절하게도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DB를 연결해주는 서드파티 탑 10까지 정리가 되어있다.
나는 DB 연결 서드파티 중 Seek Well을 사용 중이다. UI가 너무나도 간편하고, DB 연동 작업도 비개발자가 슥슥 감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복잡한 기능 없이, Seek Well은 저장된 SQL 값을 내가 설정한 스케줄에 따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업데이트해준다. 기능이 간단해서 그런지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SQL을 할 줄 모른다면, 개발자에게 한 번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 되고, SQL을 직접 할 줄 안다면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전사 서비스 운영지표 대시보드를 자동화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서드파티로는 메일머지 기능이 있는 YAMM을 사용중이다. 이 서드파티를 통해서, 지출결의서를 올려놓고 업체에 세금계산서 발행요청을 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일괄적으로 독촉 메일을 보내고 있다.
3. 개발자 흉내내기를 유도하는 세상
손으로 하려던 것을 컴퓨터가 알아서 하게끔 만드는 과정을 찾다 보면 '개발 언어를 배워서 체계적으로 직접 해라'라는 메시지들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구글에서는 구글 앱스 스크립트 작성법을 검색 결과 제일 상단에 노출시키고,
이런저런 유투버나 블로거들도 서드파티 사용법보다는 본인이 작성한 코드를 소개해준다.
코딩교육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사람들은 그 성취감에 취해 계속해서 자신이 짠 코드와 업무 효율화 방법들을 소개할 것이다.
굉장히 작은 작업을 자동화하고 싶었을 뿐인 우리 비개발자들은 저런 메시지를 접하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기분을 느낀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큰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그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면 효율을 쫒는 과정에서 비효율을 만나게 된다. 경험상, 비개발자 사무직이 자동화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업무에는 '코드'를 아는 것 보다, '나를 도와줄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 회계담당자가 자바를 배우는 것은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회계를 배우는 것 만큼 타 영역에 대한 흉내내기이고, 직무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안되는 일임을 느꼈다.
무거운 짐을 반복해서 옮기기 위해 내 근력을 키우는 대신, 잘 굴러가는 끌차 하나 구매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